La Raccolta(수확)

by 세인트

La Raccolta(수확) - Angelo Branduardi


https://youtu.be/1oxyzk2rX7w?si=bxh5beJyx3Jmw0sb

La Raccolta(수확) - Angelo Branduardi



(오래전 어느 해 여름 방송원고였던 것을 찾아 뺑끼칠^^ 해서 올립니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밤입니다. 낮의 열기가 아직 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밤이 되어서도 눅진한 공기가 남아 있네요.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 않고,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 대신 거리의 소음과 탁한 공기가 밀려들지요. 이런 밤에 풀냄새 흙냄새가 실바람에 실려올 듯한 노래를 생각합니다. 안젤로 브란두아르디의

<La Raccolta(수확)>입니다.


“Calde notti l'estate con sé / Ci ha portato già”
뜨거운 여름밤이 / 이미 우리에게 찾아왔고


이 첫 소절이 노래의 성격을 얘기해 줍니다. 이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계절의 모습이지요. '수확의 노래'라고 하면 보통 흥겨운 잔치, 들판의 활기, 풍요 같은 이미지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브란두아르디는 아주 단순한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뜨거운 밤. 그 계절의 체온. 땅이 지닌 숨. 민요라는 것은 본래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지지요. 사람보다 먼저 계절이 있고, 그 계절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이야기는 그다음입니다.


브란두아르디는 유럽 도처의 민요를 자신의 음악의 근원으로 삼는 데요, 전통적인 민요를 투박하게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월드뮤직으로 세공합니다. 마치 거친 원석이 솜씨 좋은 장인의 손에 빛나는 보석으로 재탄생되는 것과 같지요.


도시의 감정이 기분과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민요의 감정은 기후와 시간, 노동의 리듬에 기대어 움직입니다. 그래서 브란두아르디는 현대적인 전자악기보다는 전통 악기들의 질감을 고집합니다. 바이올린 같은 현의 선율, 리코더의 숨결, 탬버린처럼 작은 타악기의 소박한 진동, 이런 소리들은 자연과 가깝기에 민요는 오래도록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힘이 됩니다.


<La Raccolta>는 제목 그대로 수확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 노래 속의 수확은 농업의 장면을 넘어 공동체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민요가 그렇듯 한 사람이 차지하는 노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리듬을 나누는 노래입니다. 곡 안에는 특별히 강조되는 '클라이맥스'도 없고, 대신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습니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이고, 들판에서 춤이 시작되는 흐름. 이 노래가 주는 흥겨움은 흥분이나 과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흐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Rossi fuochi hanno acceso / Su ogni campo per ballare”
붉은 불꽃을 피워 올리고 / 들판마다 춤을 추기 위해


라고 노래하지만 여기서 '불'은 조명이나 연출이 아니라 수확의 들판에 피우는 불입니다. 동시에 상징적인 것이지요. 밤을 밝히는 것, 사람들을 모으는 것, 그리고 잔치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브란두아르디는 민요의 문법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후렴과 구절은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한 박자로 묶어내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수확의 노래는 듣는 음악이 아니라 함께 타는 음악이 됩니다.


흔히 브란두아르디의 음악은 동화 같다고들 말합니다. 실제로 그의 외모나 무대 위 분위기는 어딘가 중세의 음유시인 같은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그 '동화성'은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판타지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오래된 언어로 바꾸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현대인들은 계절을 느끼기 전에 일정을 먼저 확인합니다. 날씨보다 교통을 먼저 보고, 해가 지는 시간보다 마감 시간을 먼저 떠올립니다. 반면 브란두아르디의 노래는 시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여기서 동화란, 비현실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현실이 되지요. 수확의 시간, 들판의 시간, 밤공기의 체온 같은 것이 되겠네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노래가 수확을 낭만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브란두아르디는 '달콤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그 달콤함의 이면도 이야기합니다.


“Della raccolta è il dolce tempo / E da domani il grano cadrà”
수확의 달콤한 때가 왔고 / 내일부터는 밀알이 쓰러질 거야


라고요. 수확의 계절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베어내는 계절이지요. 생명의 결과를 거두기 위해 생명을 베어내는 계절. 이건 어떤 철학적 과장이 아니라, 농사라는 현실이 늘 품고 있는 본질일 겁니다. 브란두아르디는 그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고요.


수확의 흥겨움이 그저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축제는 늘 현실의 무게와 맞닿아 있어서 사람들이 수확의 춤을 추는 건 단지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도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버텨낸 계절에 대한 축하. 힘겨웠던 노동에 대한 인정 같은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노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수확이라는 주제를 곧바로 '사람'의 문제로 옮겨 놓는 대목에 있습니다. 곡식이 익어 수확되는 것처럼 사람도 세월 속에서 선택되고 거두어진다는 생각. 브란두아르디는 그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살짝 돌려 말합니다.


“E, curiosa, anche tu / Ti chiedi chi ti coglierà”
그리고 너도, 호기심 가득한 채 / 누가 너를 거두어 갈지 묻지


“누가 너를 거둘까”라는 이 문장은, 어쩌면 이 곡이 단순한 수확가를 넘어서는 지점입니다. 이 말속에는 사랑도 있고 운명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선택되는 순간도 들어 있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고 이 문장이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호기심’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큰 문제를 말하면서도 너무 비장하지 않게 만듭니다. 이 균형이 브란두아르디다운 맛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브란두아르디의 노래지만,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양희은의 번안곡 <아름다운 것들>의 원곡이라는 소개로 <Ninna Nanna>가 알려졌을 뿐이지요. 오랜 유럽의 자장가이지만 그처럼 부족한 소개의 원인으로 우리 라디오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그간 지나치게 영미팝을 소개하는데만 급급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La Raccolta>는 브란두아르디를 소개하기에 좋은 노래입니다. 그가 왜 민요에 바탕을 두는지, 왜 전자악기보다 전통 악기의 손맛을 택하는지, 왜 노래가 동화처럼 느껴지는지, 그 모든 답이 이 곡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골랐고요, 이 곡은 특별한 멜로디를 자랑하지 않고 반복되는 리듬과 구절로 마음을 이끌어 갑니다. 민요가 원래 그런 음악이지요. 고도의 노래솜씨나 음악성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의 결로 감동시키는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들판의 불빛 아래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수확이 달콤하다고 말하면서도 곧 베어질 밀알의 생명을 잊지 않는 노래.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수확을 인간의 운명에게까지 넌지시 옮겨놓는 노래. 브란두아르디의 <a Raccolta>는 그래서 '예쁜 민요풍 노래'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떤 음악가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표지 같은 곡이입니다.


비록 머나먼 이국의 밀밭에서 불어온 바람이지만 노래 속에서 향긋한 풀냄새와 흙냄새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머잖아 찾아올 수확의 계절을 그리며 조금이나마 더위를 가시게 되었으면 합니다.(수필/음악)


*뽀나쓰~Ninna Nanna

https://youtu.be/LXTocscoFQA?si=jLXfnESPQ-0s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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