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김 시인 01

by 세인트

(지난번'"ㅇ"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꽁트를 하나 써봤습니다. 이런 글은 첨이니 무한한 비판, 아니 비난을 환영합니다!)


성북동에는 비둘기가 사는데, 압구정동에는 '김 시인'이 산다. 그 동네는 집값만 비싼 게 아니라 분위기, 말투, 침묵까지도 비싸다. 하늘을 날던 비둘기조차 압구정동에는 함부로 내려앉지 못한다. 그곳에 사는 남자 김 모씨. 사람들은 그를 ‘압구정 김 시인’이라 부른다. 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 상무였고, 평생 시를 써서 먹고 산 일이 없으나 그를 '김 상무' 라 하지 않고 '김 시인'이라 불렀다. 그것도 '성북동 비둘기'처럼 동네 이름까지 붙여 '압구정동 김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의 이름 앞에 주소지를 붙이는 이유가 뭘까.


사실 그는 퇴직 후 몇 편의 시를 썼고, 그중 몇 편이 시문학 동호회지 같은 곳에 실렸다. 그리고 재작년 교통안전공단의 '교통질서 지키기 백일장'에서 시부문 우수상을 받으면서 지인들은 그를 '김 시인'으로 불렀고, 다른 김 씨 성을 가진 시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압구정 김 시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가 문예지에 실렸대.”
“진짜? 대단하다.”
“압구정에도 시인이 있구나..."


이런 수군거림, 또는 소문, 또는 칭찬이거나 부러움의 말들이 바람에 실려와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이후 그 자신도 스스로를 '압구정 김 시인'으로 인정했고 예전의 '김 상무' 보다 그 이름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김 시인의 시들은 주로 ‘무소유’나 '명상'을 주제로 삼았으며 그의 무소유는 늘 단정하고 따뜻했다. '무소유'가 매력적인 건, 유소유한 사람만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이며 동시에 원래 무소유인 사람의 자존심을 살리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없는 게 행복한 거다", 이 말만큼 무소유자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있는 말이 어디있겠는가.


무소유 하니

마음이 맑아진다.

내일은 더 비우리라,

오늘도 충분히 가졌으니.

비우고 비워도 다시 채워지는

이 고통을 어이 견디리!


그의 대표작인 '무소유'라는 이 시는 특히 압구정 사람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며.


어느 날 그가 가진 건물의 세입자로부터 '따박따박' 들어오는 통장의 월세를 보고는 불현듯 시상이 떠올라 쓴 시였다. 역시 관념으로 쓰는 시 보다 현실의 삶이 주는 깨달음으로 쓰는 시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시인과 비슷한 처지의 한동네 사람들에게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압구정 김 시인이 그 이름을 유지하게 되는 것은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시 쓰기 강좌 덕분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집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 개설된 그의 강좌는 그의 시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강좌의 제목은 '무소유 명상과 시 쓰기'. 강좌 소개 문구는, '삶의 결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시간'. 그러나 수강생에게는 '부자들이 모여 서로를 더 부자로 느끼는 시간'에 다름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 그 동네 중년 여성들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유한마담'이라 불렀으나 '마담'이라는 우아한 프랑스어가 이 땅에서는 별스럽게 쓰이는 바람에 사라진 이름이 되었다. 아무튼 유한마담이지만 유한마담이라 불러서는 안 되는 그들은 대체로 '잃어버린 자아'를 찾겠다며 모여들었는데, 그 잃어버린 '자아'라는 건 대부분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도 문화센터까지 와서 찾는 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찾는 자아가 더 고급진 자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의 시작 전, 마담이라 부를 수 없지만 편의상 마담이라 불러야 하는 마담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애들이 다 컸잖아. 이제 내가 날 좀 챙겨야지.”

“맞아. 요즘은 교양도 경쟁력이야.”

“우리 동네는 다들 뭔가 하나씩 하잖아. 안 하면 내가 너무 비어 보이더라.”


그들은 비어 보이는 걸 싫어했다.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어 있는 마음은 명품보다 더 비싸게 채워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바로 시였다. 문학이었다. 누군가, 왜 소설을 쓰지 시를 쓰느냐 물으니, "호호호, 소설은 길잖아요. 시는 짧고"라 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보다 명쾌한 대답이다. 누드만 그리는 어느 화가의 예술적 추구가, "옷 주름을 그리기가 어려워서"라던 대답이 떠오른다.


김 시인이 교실에 들어오자 마담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조용함은 시인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품위였다.

수다는 교양머리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입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면 더 우아해 보인다. 김 시인이 첫마디를 꺼냈다.

“여러분, 시는 마음을 비우는 겁니다.”

마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 때문에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비어 시를 채우러 온 사람들이었다.


김 시인이 질문을 던졌다.

“무소유를 생각하면, 여러분은 뭐가 떠오르세요?”

앞줄에 앉은 정마담이 손을 들었다.
“시인님, 전 요즘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어요.”

"네? 어떤?"

“차를... 한 대만 타려고요.”

강의실이 숙연해졌다.
마담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와... “언니, 진짜 수행한다. 나 같은 사람은 못해"

김 시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십니다.”


그날의 시 쓰기 강좌가 끝나고, 다음 과제는 ‘가난’이었다.

“다음 시간까지 가난에 대한 시를 써오세요, 가난은 삶의 본질을 드러내니까요.”

마담들은 그 말에 감동했다. 가난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으나 머릿속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자신을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상상하며 아픈 가슴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부모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집 아이가 올리버트위스트 같은 영화를 보고는, 자기도 고아였으면 하고 눈물짓는 것과 닮았다.


그리고 다음 주, 각자가 써온 '가난'의 시를 낭독했다.

첫 번째 마담.

“가난은
마음이 급한 사람의 얼굴.
여유가 없어서
표정도 어둡다”


마담들이 박수쳤다.

“너무 현실적이다…”

“맞아, 여유가 진짜 중요해.”

“여유가 없으면 다 그렇게 돼.”


두 번째 마담.

“가난은 습관처럼

반복되는 불평.

그래서 더 가난해진다”


박수.


세 번째 마담은 그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시를 낭독했다.

“가난한 그들에게
문학을 선물하고 싶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삶도 나아질 테니”


수업이 끝난 뒤 마담들은 카페로 향했다.

정마담이 말했다.

“우리 나중에 시집 낼까?”

“수익금 일부는 기부도 하고.”

“저소득층한테 문학 강의도 열어주고.”

그러자 다른 마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은 돈을 줘도 제대로 못 쓰잖아.”

“그래서 우리가 방향을 잡아줘야 해.”

“그러니까 문학이 필요한 거야.”


압구정 김 시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자신이 아주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압구정의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압구정 바깥의 삶을 정돈된 문장으로 다듬어주는 일.


그날 밤, 김 시인은 시 한 편을 썼다.


'무소유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질 준비가 되었다'


김 시인은 만족했다. 그리고 믿었다. 이 시는 문예지에 실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이 시는 무언가를 바꾸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어루만져주는 시를 좋아한다. 압구정 김 시인은 그런 시가 인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인기 시인이었다.

( 2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만, 이런 것도 글이라 쓰느냐는 비난이 있으면 안 이어질 예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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