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치히로 상'

by 세인트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치히로 상'을 왜 채용했느냐고. 남편은 그녀가 자기가 준 도시락을 남김없이 먹는 것을 보고 채용했다고 대답합니다. 그처럼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거라며. 아내도 조용히 웃습니다.


일본영화 '치히로 상'의 한 장면입니다. 자신들의 조그마한 '벤또'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지원한 치히로가 얼핏 꺼려질 '마사지 걸' 출신임에도 왜 그녀를 채용했느냐는 물음이었던 거죠.


이 영화 속의 마을사람들 누구나 치히로의 과거를 알지만 누구도 그녀의 과거를 꺼리거나 캐묻지 않습니다. 영화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인 치히로가 주인공이지만, 저는 거꾸로 치히로의 주변 인물인 마을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과거가 아닌 지금의 치히로를 보는 것이지요. 그게 일본사람의 문화라고도 얘기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참견을 하고, 뒷얘기 하기를 좋아한다면서요.


그런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해도, 영화가 담으려는 것은 일본인들의 문화가 아니라 영화 속 마을사람들의 캐릭터겠지요. 영화 내내 치히로는 노숙자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저는 반대로 마을사람들이 치히로를 따뜻이 대해주는 것으로도 보았습니다. 적어도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치히로에게는 위로가 될 테니까요.


영화는 치히로가 어떤 이유로' 마사지 걸'이 됐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걸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영화 속 치히로는 지금의 치히로 이니까요.


동창회에서 흔히 듣는 대화, "그 친구 사업 망했다며, 요즘 어떻게 지낸대?" 하는 게 과연 안부를 묻는 것일까요? 친구든 이웃이든, 아니면 유명인이나 연예인이든, 타인에 대해 너무나 말이 많은 세상에서 차라리 무관심이 다정함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치히로 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도 타인을 재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것만 보여주는 것 같은데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말없이 벤또를 내밀고, 주먹밥을 만들어주고, 만화책을 나눠 볼 뿐입니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편이 되어주리라 다짐하지도 않고, 그저 상대를 지금의 모습 그대로 보아주고 지금의 이야기만 합니다. 다정함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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