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에 대하여

by 세인트

동창모임 저녁자리에서, 한 친구가 앞의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어? 올해는 취업할 거니?"

앞의 친구는 국물에 코를 박은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한다.

"씨벌, 계속 놀거여!"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유서 깊은 유행가가 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은 기운다'는, 인생의 비밀을 관통하는 몹시 철학적인 가사가 담긴 걸작이다. 흔한 노동요에 반해, '노는' 것을 찬양한 희귀한 찬송가라 할 수 있다. '4H 운동'이나 '새마을 운동'처럼 온 국민이 새벽별 보기 총화노동을 하지 않으면 빨갱이 비슷한 자가 되어 남영동 끌려갈 시절에도 이 노래는 살아남았다. 명작은 군화보다 질기다.


그 옛날 여고생들 중 유독 빨간색 가방을 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도 목에 흰색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아이라면 십중팔구는 '노는' 애였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니 목디스크 때문이 아니라 '확실히 논다'하는 표식이다. 노는 남자애들은 이런 여자애를 놓치지 않는다. 선수는 선수끼리 알아본다. 말 몇 마디 건네면 쉽게 로라장에 데려갈 수 있다. 예부터 노는 여자를 '논다니'로 부른 이유가 있다. 옛 어른들은 이름도 잘 지으신다. '은근짜' 이런 것도.


그런데 왜 목에 파스를 붙이느냐 묻는다면, 또래의 남자 애들이 '끽연'을 하거나 분식집에서 소주에 농약을 섞은 것 같은 오가피주를 마시는 것으로 잘 나가는 척한다면, 여자 애들은 화류계 '언니야'들의 퇴폐미를 따라 함으로써 남보다 잘 논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목에 붙인 파스가 '언니야'들이 지난밤 육체노동의 흔적을 가리려는 목적인 것까지는 모른다. 애들은 원래 멋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 하니까.


5.18은 북한의 무장공비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라던 정치인이, 정권이 바뀌자 망월동에서 아무 비석이나 하나 껴안고 눈에서 즙을 짠다. 이 경우 좀 배운 사람이라면 "만시지탄"이라 하고, 안 배운 사람이라도 그냥 "감동이다"라고 해야 마땅한데, 대부분 그리 말하지 않는다. 입을 모아 하는 말은, "놀고 있네!".


이렇게 '놀고있는' 것을 과격하게, 또는 상스럽게 표현할 때 '지랄한다'라고 하는데, 이렇게 상스럽게 노는 것과 지랄하는 것에는 '자빠졌다'라는 동사가 수반된다. 대체로 노는 사람은 와식생활을 즐겨하여 종일 방바닥을 뒹굴거리기 때문에 나온 말로 보인다. 나가서 삽질이라도 하지 왜 누워서 뒹굴거리느냐 비난하니, 누운 게 아니라 자빠진 것이다 했던 어느 백수의 대답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논다'는 말의 외연은 무척이나 넓다. 직업이 없어 방바닥이나 긁는 것도 노는 것이고, 젓가락 장단에 술상 두드리며 노세 노세 하는 것도 노는 것이고, 학원 간다 하고는 로라장에서 남학생들과 히히덕거리는 것도 노는 것이고, 시커먼 뱃속이 다 보이는데 반성하는 척 눈물을 짜내는 것도 노는 것에 속한다.


한 때 "열심히 일 한 당신 떠나라!" 하는 광고가 있었다. 나가서 신나게 놀라는 광고다. IMF로 한강다리가 붐비던 시절 이전이었다. 돈이 이름대로 신나게 돌던 시절이었다. 수출도 잘 되고, 월급도 오르고, 집값도 오르고, 해외여행의 붐이 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유학을 못 가면 반 년짜리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이력서를 쓸 수 있던 시절이었다. 중산층의 기준이 '소나타'에서 '한 해 한 번 해외여행'으로 바뀐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다 금융위기로 금반지를 빼야 했고, 6개월 어학연수도 못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마침 문을 연 스타벅스 종이컵을 들고 다니며 쪽쪽 빨았다. 커피를 돌아다니며 마시는 시발점이었다. 단기 어학연수도 못 채워 영어로는 물 건너 갔다온 티가 안 나니, "나 미국 있을 때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가 이거였어." 하였다. 그러자 미국이나 구라파는커녕 구파발도 못 갔다 온 아이들도 같이 빨며 다녔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노는' 문화가 들불처럼 일어 한 집 건너 하나의 커피숍이 생겨났다. 덩달아 뉴요커의 아침인 베이글도 들어왔으나 달달한 카스테라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 쉽지않아 뉴요커 호소인은 비교적 드물었다.


사람은 놀기 위해 태어났느냐, 일하기 위해 태어났느냐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이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하는 것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떤 사람은 로봇 덕분에 놀 수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로봇 때문에 놀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은 '덕분에' 놀고, 다른 한쪽은 '때문에' 논다.

전자는 놀면서 사는 사람이고, 후자는 놀면 죽는 사람이다. 그러니 '논다'는 말은 외연만 넓은 게 아니라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라는 말은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다는 말인데, 주목할 것은 시습(時習) 즉 때때로다. 결코 계속하라 거나 쉬지 말고 하라는 게 아니다. 여기서 때때로는 '틈나면'이라 해도 좋고,' 생각나면'이라 해도 좋다. 많이 봐줘서

'자주'라고 해석해도 '열심히 쉬지 않고' 는 아닐 것이다.


공자님도 공부는 놀면서 하라 가르치신 것이라 하겠다.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현명한 말씀이시다. 우리는 그토록 공부에만 매진하여 서울대도 부족해 하버드대까지 나왔는데도 한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을 알고 있다. 대표적인 한 사람은, 주로 연예인의 뒤나 캐내어 "삥"뜯어 살고, 다른 한 사람은 평생 고위 공직을 누렸으나 별로 업적이 없다가, 만년에 주정뱅이 주군에 충성하다 형무소에서 백 살을 넘게 살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게 인생은 '시습'으로 잘 놀아야 하고, 노는 것도 골라서 놀아야 바람직한 인생이 될 것이다. "놀고 있네!" 소리를 듣는 놀이는 욕이지 노는 게 아닐 테고, 할 일은 안 하고 놀고 '자빠진' 것도 참된 노는 게 아닐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며 젓가락 두드리는 작부에게 넘어가 술을 퍼마시는 것도, 노는 게 아니라 돈 잃고 건강 잃고 잘못하면 마누라도 잃을 수 있는 어리석은 행위다. 과연 잘 노는 것의 참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논다는 것에 대해 오만가지 쓸데 없는 생각을 다 해봤으나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놀면 심심하고, 일하면 놀고 싶고, 그래서 놀면 또 심심해진다. 그러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는 '유희시습지, 불역열호아와 이음동의어라 하겠다. 때때로 배우든, 때때로 놀든, 남는 때에 놀고 남는 때에 배우면 된다. 죽어라 배우고, 죽어라 노는 건 짧은 인생에서 그리 권할 바가 못 되는 것 같다. 때때로 이런 잡글이나 쓰면서 노는 것은 잘 노는 일 중 하나로 널리 권할만 하다.


사족 : '하루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잡글놀이의 모둠이며, 배움이 많지 않은 사람도 글로써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심오한 글이나 학식 높은 이에 주눅들지 말고, 글로써 즐기고 글로써 놀기를 바란다. 다만 이따위 글에 숨겨둔 은유나 심오한 사상이 들어있을리는 없다. 글에는 꼭 뭔가를 담아야 한다는 신화를 믿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다. 현대의 신화는 대체로 관련 업자들끼리 만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07화압구정 김 시인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