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훔치다
4장. RUBATO - 시간을 훔치다
재즈 연주자가 곡의 흐름을 타다 보면, 박자의 규칙을 잠시 벗어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악보에 적힌 음표의 길이는 변함없지만, 연주자의 심장은 그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거나 혹은 반대로 차갑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연주자는 '루바토(Rubato)'라는 마법을 부린다.
이탈리아어로 '도둑맞다' 혹은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이 용어는, 특정 마디에서 박자를 조금 빼앗아 길게 늘어뜨리는 대신, 다른 마디에서 그만큼을 줄여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기법이다. 이는 단순히 박자를 틀리는 실수가 아니라 감정의 파고를 따라 시간의 밀도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며, 연주자가 음악에게 부리는 일종의 '응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가 정해놓은 시계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편입된다. 아침 9시의 정각성, 마감 기한의 압박, 나이대별로 완수해야 할 사회적 과업들까지. 세상이 요구하는 박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단호해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금세 대열에서 이탈할 것 같은 공포를 준다.
초등학교부터 은퇴, 아니 은퇴 이후조차, 우리는 늘 '제때'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제때 학교에 가고, 제때 취업을 하며, 적절한 시기에 가정을 꾸리는 일. 이 규격화된 정박자(On-beat)의 과정 속에서 개인의 고유한 감정이나 속도는 종종 '박자 이탈'로 간주되어 무시당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소절을 정확한 박자로만 연주하는 음악이 매력 없듯, 규격화된 시간에만 갇혀 있는 삶은 건조해지기 쉽다. 루바토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에는 연주자의 숨결이 들어갈 틈이 없다. 삶 또한 마찬가지다. 효율성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정박자의 삶에서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아이의 첫걸음마를 지켜보던 경이로움, 오후의 햇살이 주는 위로, 깊은 상실감에 온종일 서성이던 고독한 시간들까지. 이런 순간들은 세상의 시계로는 측정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루바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삶에서 루바토가 필요한 순간은 대개 감정이 이성의 박자보다 앞서거나 깊어질 때 찾아온다. 위기의 순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는 순간이라면 같은 순간도 물리적인 흐름을 멈추고 영원처럼 길게 늘어진다. 그러니 애써 일상의 박자를 훔쳐야 한다. 남들이 정해놓은 속도에서 시간을 조금 떼내어 내 영혼이 머물고 싶어 하는 그 장소와 감정에 더 오래 머물게 해주어야 한다. 시간을 늘려 그 순간의 감각을 충분히 음미하고, 그만큼 느려진 호흡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결코 삶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루바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재즈에서 연주자가 한 소절에서 시간을 훔쳤다면, 반드시 다음 소절에서는 조금 더 서둘러 곡 전체의 호흡을 되찾아와야 한다. 만약 시간을 훔치기만 하고 다시 채워 넣지 않는다면, 음악은 망가지고 삶은 방종이 될 것이다. 인생의 루바토는 무책임한 회피와는 결이 다르다. 번아웃이 찾아온 직장인이 며칠간의 휴가로 박자를 늦추는 것, 앞만 보고 달리다 잠시 멈추고 가던 길을 점검하는 것은 삶 전체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잠시 늦춰진 박자는 다음 마디에서 더 역동적으로 치고 나갈 추진력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훔쳐본 사람만이 비로소 보게 되는 풍경이 있다. 세상이 정한 속도보다 조금 늦게 걷거나 때로는 멈춰 섰을 때, 보이지 않던 세밀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늘 지나치던 길가의 가로수가 어떤 모양의 잎을 가졌는지, 매일 마주치던 이웃의 표정에 어떤 수심이 서려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색깔로 타오르고 있는지.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정박자에 몸을 구겨 넣는 대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리듬에 따라 완급을 조절할 때, 삶은 비로소 나만의 '해석'이 담긴 연주가 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매 순간 균일한 속도로 살 수 없다. 때로는 열정에 들떠 몰아치듯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허무에 잠겨 한없이 늘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훔쳐온 시간만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자기 확신, 그리고 그 변덕스러운 리듬조차 아름다운 곡의 일부로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이다. 어쩌면 성숙함이란, 세상의 박자와 내 심장의 박자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할 줄 아는 루바토를 터득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나의 연주가 너무 팽팽히 죄어 있어 숨이 막혔다면 잠시 루바토를 권한다. 정해진 일과표에서 단 10분이라도 훔쳐내어 창밖의 하늘을 응시하거나, 아무 목적 없는 공상에 잠겨보는 것. 혹은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결론을 서두르는 대신 침묵을 조금 더 길게 가져보는 것. 그 짧은 일탈이 만드는 시간의 변화가 오히려 나의 내일을 더 경쾌하게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박자감보다 중요한 것은 곡 전체가 품고 있는 분위기다. 나의 인생이라는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당신이 얼마나 정확히 박자를 맞췄는지가 아니라, 그 곡이 얼마나 깊은 느낌을 담고 있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엄격한 시계는 서랍 속에 넣어두고, 나의 루바토로 생의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대목을 마음껏 길게 늘어뜨려 보아도 좋겠다. 그 훔친 시간 속에 진짜 내 인생이 살아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