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

일상의 탄력

by 세인트

3장. GROOVE - 일상의 탄력


재즈 공연장에 가면 눈에 띄는 관객들이 있다. 그들은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베이스의 첫 저음이나 드럼의 가벼운 하이햇 소리만으로도 이미 고개를 까닥이거나 발끝으로 박자를 맞춘다.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연스럽게 일렁이는 상태, 우리는 그것을 '그루브(Groove)'라고 부른다.


재즈에서 그루브는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을 연주자들이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리듬 속에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기분 좋은 탄력으로 채울 때 발생한다. 물론 듣는 이들의 리듬도 마찬가지이고. 똑같은 4분 음표라도 어떤 연주자는 살짝 앞서 가고, 어떤 연주자는 아주 미세하게 뒤에 머문다. 이 미묘한 밀고 당김이 팽팽한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리듬은 기계적인 리듬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얻는다.


이 '그루브'의 원리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힘과 놀랍도록 닮았다. 많은 이들이 일상을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출근길, 늘 같은 시간에 마시는 커피, 반복되는 업무와 가사 노동. 이 기계적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종종 삶의 생동감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삶의 고수들은 이 반복되는 마디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그루브'를 찾아낸다.


그루브가 있는 삶은 결코 경직되어 있지 않다. 매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날의 기분, 창밖의 날씨, 혹은 곁에 있는 사람의 다정함에 따라 미세하게 박자를 변주할 줄 안다. 바쁠 때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리듬을 당겨보고(Pushing), 마음이 소란할 때는 일부러 한 박자 쉬어가며 여유를 뒤로 미루기도(Laid-back) 한다. 이렇게 일상의 루틴 속에 자신만의 탄력을 부여할 때, 지루했던 반복은 비로소 '리듬'이 된다.


우리가 삶에서 슬럼프를 겪거나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대개 이 그루브가 깨졌기 때문이다. 삶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서 유연함이 사라지거나, 반대로 너무 느슨해져서 아무런 긴장감이 없을 때 우리는 '삶이 삐걱거린다'라고 느낀다. 재즈 연주자가 동료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듯, 우리도 삶의 그루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삶의 텐션을 점검해야 한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너무 뒤처져서 리듬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를.


흥미로운 점은 그루브가 가장 잘 느껴지는 순간은 가장 평범한 리듬이 반복될 때라는 것이다. 화려한 솔로나 복잡한 화성 뒤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베이스와 드럼의 안정적인 반복 속에서 그루브는 꽃을 피운다. 삶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성취나 극적인 사건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끝까지 살아가게 하는 힘은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거운 리듬으로 바꿔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간지럽히는 아침,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퇴근길의 발걸음, 임박한 마감 기한에도 나만의 속도를 잃지 않는 일처리의 유연함.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 삶의 그루브를 만든다. 그루브가 형성된 일상은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고무줄처럼 유연한 탄성이 있기에, 잠시 흔들릴지언정 이내 자신의 리듬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너무 '정박자'에만 맞추려 애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의 악보에 그려진 대로만 연주하려 하지 않고, 마디와 마디 사이의 빈 공간에 나만의 작은 변주를 시도해 보자. 조금 늦어도 괜찮고, 잠시 엇나 가면 어떤가. 그 미세한 어긋남들이 모여 삶을 춤추게 할 근사한 그루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즈와 닮은 삶이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나만의 그루브를 유지하는 것이겠다. 재즈처럼 즐거운 인생? 그루브를 '타보면' 알게 된다. 즐겁지 않을 수 없다.(수필/음악)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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