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산부인과, 여의사님이 진료하십니다'
지나는 길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어느 산부인과의 의사가 여자이며, 그가 진료를 한다는 단순 정보다. 이상할 것 하나 없다. 만일 'ㅇㅇㅇ비뇨기과, 여의사님이 진료하십니다'라고 걸어놓았다면 단순 정보를 넘어 엄청난 홍보효과를 나타낼 것이지만.
그래도 산부인과의 특성상 여의사가 진료한다는 안내는 의미가 있으니 그리 썼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진료하십니다?" 내 까탈스러운 성격에 딱 시비 걸고 싶은 서술어다. 상식적으로라면 'ooo산부인과, 여의사 진료' 거나 '여의사가 진료하는 ooo산부인과' 쯤이어야 할 것 같은데 '진료하십니다'는 뭔가?
결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쁘신 여의사께서 직접 현수막 업체에 주문했을 리 없고, 직원에게 시켰을 테니 직원이 업체에 그리 말했을 것이다, "여의사님이 '진료하십니다'"라고. 그로서는 하나도 안 이상한 표현이다. 늘 쓰는 말일테니. 다른 하나는, 그 '여의사님'께서 스스로 그리 표현했을 것. 왜냐하면 어떤 환자도 "여의사!" 이렇게 부르지 않으므로.
심지어 그를 의사로 만든 부모들 조차 딸이 대견하여, "우리 의사님, 의사님" 하고 부르지 않겠나. 드라마에 보면 남편에게도 "여보"라 하지 않고 "회장님, 회장님" 하던데. 더구나 의대 합격하면 모교에 현수막이 나붙는데 스스로 '님'자를 붙인들 무엇이 낯간지러운 일이겠나. 안 붙이는 게 문법상 틀렸다 여길 것이다.
아주 드문 일이겠으나 현수막 업자가 알아서 그리 썼을 수도 있겠다. 현수막 업자도 평소 의사를 의사라 부르지 않고 "의사 선생님" 또는 "의사님"이라 할 테니. 더구나 일을 주는 갑이 아닌가. 고객은 왕이다. 짜장면 한그릇 시켜도 왕이기에 별점 테러로 문 닫게 할 수있다.
원래부터 '님'을 붙여야 하는 이름이 하나 있긴하다. 목사님도 그냥 '목사', 신부님도 그냥 '신부'로 부를 수 있지만, 스님을 '스'라 부르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따라서 '스'는 원래부터 이름인 '스님'인 것이다. 스님을 존경하기 싫다고 '스'라 부를 수 없다는 말이다. 절을 차지하려 몽둥이를 들고 패싸움을 하거나, 아들 낳으려 백일기도 하는 여인이 가련해 몸보시로 길상이 같은 아들을 만들어줬어도, 박경리 선생조차 그를 '스'라 하지 않으신 것만 봐도 알 수있다.
언젠가 지인의 어머님이 초파일 절에 갔다가 무슨 화가 난 일이 있었는지 절의 스님 욕을 하며 "스..." 하시다 "놈", "아, 그 스놈이..."라고 해서 우스워 죽는 줄 알았다. 욕을 하고 싶었으면 '중놈'이라 하면 될 텐데 평소 '중'이란 말을 잘 안 쓰다보니 "스..." 하다가 "스놈"이 되고 만 거다. 그래놓고 본인도 우스웠는지 깔깔 웃으셨다.
이처럼 스님을 제외하고는 태어날 때부터 '님'자를 붙여 마땅한 이름이란 없다. 그러나 스스로, 또는 남들이 알아서 '님'자를 붙이며 존중하니 원래 제 것인양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새파란 공무원을 '영감님'이라 하지 않나, 내게 낫놓고 기역자도 가르친 적 없는데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으면 들은척도 않는 별 희한한 사람들이 적잖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꽃도 꽃이라 불러야 꽃이 된다듯, 내가 님이라 불러줘야 너도 비로소 님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님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