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실은 중국인이다!

by 세인트

"내가 사실은 중국인이다!"

방송인 사유리씨의 할아버지가 임종 때 가족들 앞에서 남긴 마지막 유언이랍니다.

사유리씨도 할아버지를 똑 닮았을 겁니다. 그리고 사유리씨가 늙어 마지막에도 기발한 유언으로 가족들이 슬플 겨를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 뜬금없는 사유리씨 할아버지 얘기냐고요? 네 그 양반이 제 롤모델이시거든요. 그 할아버지처럼 살다가 죽을 예정입니다.


존경? 그런 거 받을 생각도 자격도 없고, 죽는 날까지 촐싹대며 싱거운 짓 하다가 마지막에 가족들에게 뭔 쇼킹한 유언으로 기절을 시킬까 생각 중입니다. 당연히 고상함이나 품위 같은 건 제게 어울리지 않으니 생긴 대로 재밌게 놀다가 갈 계획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나이 되도록 재밌게 산 것 같습니다. 음대에 가서 늘씬한 여자의 몸뚱이 같은 첼로를 껴안고 살고 싶었으나, 그건 부잣집 애들이나 가능해서 방향을 슬쩍 비틀어 방송사 음악 PD로 살았습니다. 말이 청취자를 위한 것이지, 제가 좋아하는 노래 듣고 제가 하고 싶은 말 떠들고 월급 따박따박 받았습니다.


비록 뼈가 부러져 여태 철심을 박고 있지만, 과부 만든다는 반대도 무릅쓰고 오토바이도 실컷 타고, 흰머리 날리며 뚝섬유원지 스케이트보드장의 최고령 보드족도 되었습니다. 없는 돈에 대포처럼 생긴 카메라 들고 똥폼도 잡아보고, 드디어는 '겉멋족'의 최종 목적지라는 카페도 차렸습니다. 그것도 맘대로 하고 싶어 아예 낡은 집을 사서 제 손으로 완전히 뜯어고쳐서요.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장사는 뒷전이고, 게서 음악회 하고 공연하고 동네사람들 모아 글쓰기교실도 열고 발달장애인 팟캐스트도 만들고.... 아무튼 별별짓을 다해봤지요. 아, 말년에 팔자에 없는 어공이 되어 고향의 음악창작소라는데서 나랏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불러 신나게 콘서트도 열고요. 물론 벌어먹고 사는 일이야 뭘 해서든 하지요, 겨우 겨우 가솔들 굶기지는 않을 정도로. 편의점 알바만 해도 밥은 안 굶겠습디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에게 그럽니다, "굶어 죽지 않으니 쪽팔리게 살지 마라"라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굳이 내가 남긴 발자국 남이 따라와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위대하거나 위대하고 싶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고,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혼자 바로 서려 버둥거리다 자빠지느니 기울어진 운동장을 미끄럼틀 삼아 신나게 미끄럼 타며 놀기로 한 거죠. "인생 뭐 있어? 마셔!" 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그럼 그리 안하면 뭐하고 노나...아니, 어떻게 견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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