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계에 새로운 유파인 '낭비파'의 태동을 알리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최근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준 어느 작가의 글에서 예감한 것으로, 그의 글 속에 그림을 취미로 하시는 그의 시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그 시어머님은 화가 나면 더욱 열심히 그림에 매진하신다는데, 이는 어느 직업화가보다 투철한 예술혼의 발로라 할 수 있다. 화가 난다고, 슬프다고, 술이나 부적절한 연애로 명성을 망치는 화가가 한둘이던가. 그에 비해 화를 예술로 승화하는 것은 여간한 예술적 의지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글에 따르면 이 예술혼의 시어머님은 남편과 싸워 화가 나면 더욱 거친 터치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런 때는 물감을 아끼지 않고 마구 바르고 또 바르는 기법을 사용하신다고 전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낭비파'의 태동을 예감했다. 낭비파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낭만파의 영혼을 견지하며 입체파의 목표를 구현려는 것으로, 물감을 아끼지 않고 낭비하여 덧바르고 또 덧바름으로써 피카소 조차 평면을 벗어나지 못했던 입체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 하겠다.
물감을 아끼지 않고 바르고 또 발라 드디어는 회화의 한계인 이차원을 넘어 두툼한 질감의 삼차원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으려는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있다. 더구나 평상시보다 남편과 싸워 화가 날 때 더 강렬한 창작욕을 느끼신다 함은, 화를 창작의 에너지로 삼는 것으로, 화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화를 예술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이 가지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작가의 시어머니 한 분의 천재적인 창조성에 연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 낭비파의 태동은 시대의 요구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 하겠다. 왜냐하면 '가난한 화가'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에는 이처럼
물감을 마음껏 낭비하는 기법을 구사하기 어려웠으나, 이제 우리 사회도 경제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며 창작을 위한 재료는 얼마든지 낭비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간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을 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 혹시 아르바이트나 독지가의 도움으로 미대를 다녀도 졸업전시회도 돈이 들고, 졸업도록도 돈이 들고, 인사동에 그림을 내걸 때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예술가로 행세하려면 음악은 독일, 미술은 프랑스쯤 유학을 해야 시간강사 자리라도 얻어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으니, 나가 놀더라도 한 번은 갔다 와야 했다.
좀 싸게 해 보려 러시아에서 성악을 했다든가, 조지아에서 회화를 했다든가 하는 사람은 싸게 했다고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조삼모사일 뿐, 그때 아낀 비용을 나중에 지도교수에게 쓰면 아예 고급의 세계를 넘볼 수 없는 건 아니더라며 고백하는 이가 더러 있기는 했다. 그 세계를 평범한 세계와 구분짓는 용어로 그들만이 쓰는 단어가 있다. '전, 공, 자'. 공학을 전공하거나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전공자'라 부르지 않는다.
이제는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마음껏 물감을 낭비하며 두툼한 회화, 즉 삼차원의 질량을 가진 새로운 화풍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평면적인 것들이 입체화되는 시대에 회화의 평면에만 머무르는 고전적인 기법은 작별을 고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 점에서 낭비파의 등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화단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사조라 해야 할 것이다. 재료를 마음껏 사용하여, 즉 돈을 아끼지 않거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예술이란 후기자본주의의 예술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사실은 예술계가 그간 권위이나 순수성을 내세우며 모른척 했을 뿐, 예술이 자본에 복무한지는 이미 오래라는 것이 세간에 널리퍼진 정설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낭비파의 돈을 찍어 바르는 기법이야말로 예술가의 고질병인 허위의식에 휘둘리지 않는 참 예술가의 면모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할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화단에 낭비파의 등장을 환영하며, 끝으로 이들의 탄생을 예감하게 해주신 브런치의 모 작가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하는바다.
* 알람 :이 글의 단초가 브런치 작가 '미스블루' 님의 '초상화를 가진 고양이'임을 이후 작가님의 허락을 받아 공개합니다. 읽어보세요 넘넘 재밌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