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라는 제목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체적인 제목은 제목의 텍스트적인 의미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목을 정하기 귀찮은 경우 매우 유용하다. 더욱이 뭔가 말로 표현 못 할 깊은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에 꿩 먹고 알 먹고다. 아무렇게나 대충 정하고도 아무렇게나가 아닌것 않은, 깊은 고민을 담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특히 '무제 02'는 그전에 '무제'나 '무제 01'이 없었음에도 상관 없이 쓰인다. 마치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일관성 있게 천착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디든 전시회에 갔던 기억을 더듬어보라. '무제 02'가 있어 혹시나 하고 '무제 01'을 찾으면 안 보이지 않던가?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만일 시나 음악이나 미술작품을 만들고는 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거나 귀찮을 때 바로 이 '무제 02'를 쓰면 좋다. '무제 2'가 아니고 '무제 02'다 그리 써야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감각이 된다. '무제 ver.02'는 더 좋다. 하지만 너무 그러면 고상한 예술작품 같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냄새가 날 수는 있으니 가려서 써야 한다.
새해 들어 책을 한 번 내볼까 하고 그간 조금씩 쓴 글들을 갈무리해, 네오클래식 영화 음악에 대한 '기억의 밀도'와 문학 속의 시간을 키워드로 하는 '시간의 초상'이라는 두 개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마치고 나니 이런 것을 굳이 책으로 낼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세상에 넘치는 게 책이고, 세상 누구도 다루지 않은 주제라 해도 과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우쭈쭈 빨아주는 글에는 재주가 없으니, 관심도 없을 책을 내는 건 자뻑 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만 같다. 대신 브런치에나 올렸다 시들해지면 지워버렸다 하며 놀아야지, 하고 맘을 먹으니 다시 룰루랄라 기분이 좋아졌다. 적어도 오늘치만큼은 가벼워진 것 같다. 내일은 또 뭘 깨달아 가벼워질까? 목적을 두지 않으니 이토록 즐거운 것을. 더불어 이 글의 제목도 그냥 '무제 02'로.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당연히 난 '무제'나 '무제 01'은 쓴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