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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법칙

by 박태신

거실 커튼을 달기 위해 커튼 핀을 사고서 어제 부모님 댁에 들렀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이중 커튼을 달았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여느 때처럼 늙은 어머니는 여러 음식을 싸주셨다.

오늘 그 음식으로 점심을 해먹었다. 돼지불고기, 상추, 양파, 고추장, 두부 부침 그리고 한 달 전 막내동생네와 함께 담그신 김장김치로 특별한 밥상을 차렸다. 요즘 버릇이 들었는데 한 입 한 입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설거지를 하지 않고 걸개 달린 드립 커피 하나 꺼내 마셨다. 평소엔 식사 직후 치간칫솔을 이용하는데 오늘은 미뤘다.


남향 창으로 12월 세 시의 햇살이 들어와 내 몸을 덥혀주었다.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는.


방안은 내 손길이 만든 너저분한 상태. 다른 말로 하면 생명 활동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책상 위엔 지하철역 입구에서 받은 헬스장 전단지와 핫팩, 외국에서 날아온 크리스마스 엽서가 놓여 있다. 앉은뱅이 밥상엔 듬뿍 푸는 바람에 많이 남은 고추장, 배가 불러 남긴 밥, 음식 묻은 수저와 사용한 티슈가 널려 있다. 세탁기 안엔 조금 전 세탁을 마친 속옷들이 납작하게 누워들 있다. 지금 꺼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정해진 루틴 마냥 급하게 치우고 닦고 정리하곤 했다. 마치 그렇게 하고 난 후의 시간만이 소중한 것처럼.


짧은 이 글은 이렇듯 나를 느슨하게 놔두었을 때 써졌다. 식사할 때 자세 그대로 매트 위에 앉아, 양반다리에 베개를 얹고서 썼다. 아니다. 썼다기보다 써졌다라고 말해야 맞겠다. 절로 노트와 지우개 연필이 손에 잡혔으므로.


커피는 식은 지 오래. 그래도 다 마시게 될 거다.


어제 본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에서처럼 만찬이 끝난 뒤에야 뒷정리를 하듯, 비록 홀로 만찬이지만 오늘 나도 그렇게 했다. 몸을 고달프게 하는 강박적 행동을 내쳤다. 조금 지저분해도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했다. 엔트로피 법칙(무질서화 법칙)에 따랐다. 방향감각이 없어 사방으로 향을 퍼트리는 커피처럼.


태양이 조금씩 서쪽으로 향해 갔다.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태양의 이동이 알려준다. 달팽이 기어가듯 느리게 자리를 옮겼으므로 시간이 발자국 남기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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