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과 가림

by 박태신

수원 화성에 가면 ‘치’(雉)라는 것이 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일종의 미니 지오피 같은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해 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雉’는 ‘꿩 치’ 자인데 꿩이라는 동물이 자기 몸은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전부 10군데가 있는데 내가 본 것은 ‘남치’(南雉)였다.

‘치’는 자기 보호 본능이 지혜롭게 구현된 형태다. 왕의 지방 처소인 행궁을 비롯해 성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이 한 군데라도 뚫리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이 중요한 것은 다 아는 사실. ‘치’는 일종의 예방 장치다.


간혹 감시를 소홀히 해 침입자가 생기면 어쩔까. 우리 몸에 면역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면 병균이 침입해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백혈구가 선봉에 선다. 마찬가지로 성 내부가 고루고루 방비가 잘 돼 있다면 설사 성 한쪽이 뚫려 침입자가 들어와도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도 ‘치’가 필요하다.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우리 마음의 틈을 수시로 노리기 때문이다. 마음 둘레에 ‘치’를 설치해 생각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중요한 일을 앞둘 때는 더욱 그렇다. 정신 무장이다.


그런데 마음은 아무리 무장해도 몸이나 성보다 쉽게 뚫리기 일쑤다. 이를 대비해 예방주사를 맞아 몸속에 항체를 만드는 것처럼 마음의 항체를 만들어 놓으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들어와도 기를 펴지 못한다. 노련한 사람들은 힘들 때 오히려 미소를 짓거나 웃어서 마음의 항체를 가동한다. 항체는 많을수록 좋은 최상급 무기다. 그렇지만 나처럼 마음의 성벽이 두껍지 못하고 항체가 힘을 쓰지 못할 때가 많은 사람들은 수시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느라 바쁘다. 마음의 연고가 남아나질 않는다.


이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선수를 치는 것이다. 마음의 ‘치’를 다른 방식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마음은 독특하게도 ‘무념’이라는 ‘치’가 정신무장이라는 '치'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생각이 없는 치’다. ‘무념 치’는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생길 때 긍정적인 무언가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설적으로 ‘나’라는 아군에 집중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라는 적군은 그냥 내버려둔다. 아군의 에너지를 뺏어가지 못하게 숨는다. 그러면 적군은 힘이 빠지고 교란 상태에 빠지다 제풀에 물러간다. 사람마다 적절한 선택지가 있을 텐데, 나에겐 산책과 여행, 글쓰기가 ‘무념 치’다. 나를 지키고 숨기는, 보이지 않는 ‘치’다. 적군이 왔다가 남겨놓은 생채기 정도는 천천히 복구하면 된다. 건강한 ‘숨김’이다.


영주 소수서원 내를 둘러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붉은색 소화기가, 위가 뚫린 검은색 사각 판자로 가려져 있었다. 겉에 소화기 심벌이 그려져 있으니 누구든 그 안에 소화기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지를 여행하다 경험하곤 하는데 한옥 같은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살펴볼 때 붉은색 소화기가 눈에 거슬리곤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땐 되도록 소화기가 안 나오도록 찍는다. 소수서원의 소화기 가림 판자는 그런 불편(?)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그렇다고 소화기가 불필요하거나 부끄러운 존재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소방차처럼 태생적으로 붉은색일 수밖에 없는 소화기의 진한 원색이 지나치게 도드라져 보인다는 말이다. 소화기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면서도 아주 작은 자리만 차지하는 고마운 존재다. 한옥 문화재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 ‘가림’이라는 행위는 존재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외관을 가리는 것이다. 티가 나는 군복이 아니라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보디가드의 행색이다. 보디가드는 주목받는 보호 대상 곁에서 되도록 자신을 가리는 것이 미덕인 존재다. 그리고 건장하다. 부끄럽지 않은 가림이다.


숨김과 가림이 긍정이 되는 풍경을 보았다. ‘치’와 가림 판자가 오래 인상에 남아 있었다. 숨는 곳과 가려 놓은 것을 글로 꼭 드러내고 싶었다. 유적지 여행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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