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과 겨울

by 박태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시간. 미리 오전에 카페에 가서 ‘브런치’ 한 꼭지 완성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침에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배낭을 꾸려 놓았는데, 5월 말부터 30도를 넘어 버린 날씨엔 어딜 가는 것도 그렇다고 방에서 낮잠을 자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다 별 기대 없이 ‘네이버 영화’에서 선택한 무료 영화 <씨 오브 트리스>(The Sea of Trees). 죽으러 들어간 ‘나무 바다’ 속에서 주인공이 또 다른 자살 시도자와 함께 헤매는 이야기. 그런데 아껴 가면서 먹고픈 음식 같은 영화라 할까.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랐다. 죽음, 사랑, 죽은 영혼과의 소통 같은 소재에 관심이 있다면 강하게 권한다. 게다가 감독이 <굿 윌 헌팅>을 찍은 구스 반 산트인 것을 알면 구미가 확 당길 것이다.


거의 20년 전 『옛이야기의 매력』이라는 책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옛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 머릿속에 어른들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함을, 그걸 안심하고 경험하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당시 충격과 흥분 속에서 읽은 책이다. 지은이 브루노 베텔하임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옛이야기 중 <헨젤과 그레텔>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 옛이야기가 위 영화의 얼개이고, 동화책 자체가 가장 소중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글의 제목 ‘노랑과 겨울’은 죽은 영혼이 산 사람에게 알려주는 답변이다. 끝까지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이 단어들이 발현되는 순간에 나는 감탄을 자아내고 말았다. 무슨 뜻이냐고? 예전 <오마이뉴스>에 책 소개 글을 쓸 때 나는 에둘러 간다고 할까 내 경험을 보태며 조금은 갈증 나게 글을 썼는데 그건 나만의 서평 쓰기 방식이었다. 내 서평을 읽은 이들이 잠재적 독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못 보신 분들은 영화 보시고 해갈하시길.


내게 노랑과 겨울을 연결시켜 주는 대상이 하나 있다. 늦겨울이 되면 기다리곤 했던 산수유 꽃. 나는 산수유 꽃을 ‘노란색 함박눈’이라고 표현한다. ‘노랑 함박눈’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강한 빛깔이 아니면서 가지 전체에 은은하게 함박눈 모양처럼 피어 있어서 그렇다. 겨울이 자신의 흔적을 산수유에 남겨 놓고 물러갔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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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달리 올봄에는 안경을 벗고 속살을 들여다봤다. 하나의 꽃송이 속에 가느다란 작은 꽃이 여러 개(20~30개) 있고, 꽃받침이 네 장이며 암술은 하나, 수술은 서너 개였다. 이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다발(꽃송이)을 이루고 이 다발들이 모여 산수유 꽃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눈이 침침해 안경을 벗고서야 보게 된 세상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 뜻밖에 보석 같은 영화를 보았고 이 글도 쓸 수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누군가의 안내를 받은 느낌이다.


덧붙이는 말. 비가 내린 월요일. 카페에서 이 글을 퇴고하면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다운로드하였다. 산책하고 집에 와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봐 버렸다. 온통 노란 세상을.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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