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 두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2010년 집처럼 드나들던 도서관에서였다. 동네 새는 아닌 듯, 조금 먼 거리를 가는 듯 아주 높은 곳에서 날갯짓을 연신 해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5월의 맑은 하늘에 검은 새 두 마리만이 박혀 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를 좇아 눈길을 옮기다가 햇빛 때문에 그만두었다.
눈은 다른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낮달이다. 초승달이다. 아치 모양 시기를 지나 두터워진 초승달의 하얀 자태도 푸른 하늘에 박혀 있었다. 잘 찾아보려 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거라 우연한 발견을 하고 나름 뿌듯했다. 달이야 낮에도 자기 행보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햇빛 때문에 안 보일 뿐. 그런데 그런 달이 가끔 낮 나들이를 드러내고 싶을 때가 있나 보다. 저만치 태양이 엷은 졸음을 자극하면서 따스한 기운을 흩뿌려주고 있는 하늘 길을 아주 느리게 날아가고 있었다.
가끔 별스러울 바 없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신기해한다. 보통 ‘초승달’이라는 말은 잘 쓰지만, ‘초승’이라는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다. 초승달은 그러니까 ‘초승(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때에 뜨는 달이다. 달의 활시위 모양이 위쪽을 겨냥하고 있다. 지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초승에 뜨는 달”이라고 간단히 나오지만 9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자사전 속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초승에 돋는, 눈썹처럼 가는 조각달”이라 나와 있다. 사전에 나온 표현 치고 참 예쁜 단어가 모여 있다. ‘초승’, ‘돋는’, ‘눈썹처럼’, ‘조각달’.
바람이 살랑거렸다. 저만치 한 나무의 힘없는 나뭇잎들이 앞면 뒷면을 동시에 연달아 내보이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센 바람이 더해지니 움직임도 빨라져, 나무 한 그루 전체가 현란한 카드 섹션을 보여주었다. 기운 센 침엽수 잎이나 뾰족한 바늘잎은 표현할 수 없는 몸짓이다. 가까이 다가갔다. 바람이 멈추니 그 나무의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 버렸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렇게 나의 ‘주목’을 받았으니 나무도 나뭇잎도 잠시 기분 좋았을 터.
늦은 점심을 먹고 도서관 화장실 창가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와 창턱에 와 앉았다. 배 부분이 노르스름한 작은 새였다. 그물 철망이 있으니 새가 들어오거나 내가 손을 뻗치지는 못한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창턱에서 총총걸음을 해댔다. 조금 더 있다 가라고 칫솔을 입에 문 채 동작을 멈췄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또 하나의 신기로움이었다.
그해 5월 생일날, 선물 받은 남방셔츠를 입는 것으로 그해 첫 반팔 옷 나들이를 했다. 계절의 전환기이긴 마찬가지이고 올해도 반팔 남방셔츠를 선물 받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나이 들어 추위를 더 타서 그렇겠지만 날씨도 아직 기회를 주고 있지 않다. 또 사전을 찾아보니, ‘남방셔츠’는 ‘남방(南方)’ 사람들이 입는 옷과 비슷하다는 데서 생긴 말이라 나온다. 그리고 “여름에 양복저고리 대신 입는 간편한 남자용 윗옷”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새로울 것 없는데 적확한 표현을 알게 되니 또 신기했다.
생일은 그런 날인가 보다. ‘살아있음’과 ‘신기함’을 1년에 한 번쯤은 세게 느껴 보는 날 말이다. 그런 생일맞이로, 생일 축하로 자신과 벗들을 ‘자극’하며 살면 좋을 것이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2019년 올해 내 생일은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는 것으로 나를 자극했다. 며칠 지나 ‘브런치 작가’가 됐음을 축하하는 메일이 날아왔다. 이왕이면 초승께 태어난 분들은 나와 더불어 조금 더 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