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바람

by 박태신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바람’(風)을 글 소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비 한 마리가 급습했다. 문 닫을 시간, 모두 가고 손님은 나 혼자여서 나비가 날아다닐 공간은 넉넉했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나비가 바람이 들었나? 삼겹살 냄새에 끌렸나? 무얼 바라고 들어왔을까?


주인아저씨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나비를 내보내려 팔을 들어 휘저었다. 지그재그로 날쌔게 움직이는 나비를 내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주인아저씨와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비가 복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주인아저씨가 중얼거렸다.

이날보다 이틀 전 걷는 이 하나 없는 덕산 옥계저수지 둘레길에서 사람 대신 산적 같은 바람을 만났다. 저수지 바람이 내 주변 나무들에게 사정없이 몰아쳤다. 매서웠다. 나뭇잎들은 쉴 새 없이 나자빠졌고 줄기는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저 바람은 나무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로운 존재인가? 그저 견뎌내야 하는 버거운 존재인가?


바닷가 방풍림의 나무들은 힘이 센 나무들이겠지만 내가 본 나무들은 허약해 보였다. 큰 나무에서 잘린 기다란 가지가 그 아래 앙상하고 작은 나무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작은 나무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바닥에 내려놓아 주었다. 역시 바람의 짓이겠지.


그런데 저수지에서 내려오다가 멋진 풍경을 보고 말았다. 바람이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휘젓고 있었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보리밭 자태가 정말 황홀했다. 보리 이삭을 매만져보니 꺼끌꺼끌했다. 성질이 모난 것 같다. 모난 보리 이삭들이 바람이라는 안무가의 안무를 받는 날렵한 발레리나가 되어 있었다.

바람은 ‘바라다’의 준말 ‘바람’(希)과 동음이의어다. 어원적으로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둘 다 방향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람’(風)은 공기의 움직임이고 ‘바람’(希)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바람(風)은 고기압 지대에서 저기압 지대로 분다. 공기가 공기 많은 곳에서 공기 적은 곳으로 옮겨가는 흔적이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다. 바람(希)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상태다. 그렇게 원하는 이의 삶이 나름의 균형을 이루었으면 하는 것이다. 바라고 노력한다. 그래서 바람(風)과 바람(希)은 명사의 형태를 띤 동사다.


바람(風)을 맞으며 바람(希)을 가지면 최상의 어울림이겠다. 둘 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 살아있음의 지표다.


바람이 분다. 마음속에 바람이 잔뜩 든다. 어디 자연 속, 나비처럼 맛있는 냄새 나는 곳으로 급습해야겠구나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