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 시시때때로 눈물을 흘린다. 줄줄 흘러 계속 눈물을 닦아내야 한다. 그냥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두기도 한다. 그런데 소리가 나지 않는 눈물이다. 솟구치는 감정도 없다. 대신 입의 움직임이 거하다. 턱이 아플 정도다. 그러니까……하품 눈물이다.
가끔 지하철 좌석에 앉아 책을 읽을 때가 그렇다. 책을 읽다 하품을 하면 이내 눈가가 촉촉해진다. (물론 책을 읽을 때마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계속 책을 읽는다. 하품이 계속 나온다. 이내 눈가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콧물도 나온다. 어쩔 수 없이 1회용 티슈로 눈물과 콧물을 훔치는데 여러 장의 티슈를 꺼내야 할 정도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무슨 감동적인 책을 읽고 저러나 또는 감정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구나 생각할까 봐 민망해서 고개를 못 든다. 핸드폰과 노트북 모니터는 오래 봐도 그런 일이 별로 없다. 눈물이 아날로그 감성을 지녀서 그럴까.
특히 강도가 심한 활동을 오래 하고 나서 피곤이 극에 달할 때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연거푸 하품을 하게 되는데 눈물과 콧물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나온다. 영화 <우는 남자>에서 장동건이 펑펑 우는 장면이 나온다. 킬러의 눈물이어서 그런지 격한 소리와 더불어 흐른다. 북받침의 눈물이다. 내 눈물이 그럴 때의 눈물이다. 다만 소리는 없고 격한 입 모양새가 동반하는 눈물이다. 창피한 눈물이다.
병인 줄 알았다. 콧물이야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눈물은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결막염을 앓은 적이 있어 그때를 기회 삼아 안과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정상적인 반응이란다. 내가 봐도 지인이 봐도 심하긴 하지만 정상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에는 왠지 병이 아니어서 약간 서운함이 들었다.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여주인공을 그린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땐 작가가 주인공에게 조금 ‘품위 있는’ 병을 부여했구나 싶었다. 겉으로 티가 안 나면서 주인공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묘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질을 앓는 주인공을 설정하면 쓰는 작가도 읽는 독자도 약간 민망할 것 같다. 치질을 앓고 수술도 받아 봐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병원 가기 전 그런 품위 있는 병을 기대했는데 아, 내 눈이 정상이구나.
그런데 하품 눈물을 하고 나면 좋은 점도 있다. 개운하다. 정화된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의 더께가 벗겨지고 피로가 줄어드는 느낌은 든다. 게다가 내 눈은 기분 좋게 샤워를 했다. 실제로 하품은 몸에 아주 이롭다. 본인이 번역한 『몸을 씁니다』에 그런 내용이 나와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품은 내 몸과 몸속 세포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뛰어난 방법이다. 하루에 가끔씩 일부러 하품을 하면 가라앉았던 기분이 되살아날 뿐 아니라 몸을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또 가능하면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하라고 하는데 이 책 덕분에 혼자 있을 땐 그렇게 한다.
치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장점도 있으니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의 눈치도 덜 의식할 생각이다. 내 눈물샘에는 물이 풍부하다. 물기 없는 사막이 아니라 비가 듬뿍 오는 습지대다. 물론 나도 감동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울음의 눈물’도 가끔은 내비친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