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구역서비스

by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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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청량산 입구 오르던 때가 떠올랐다. 혼자여서 좋은 경험이 하나 더 추가됐다. 더구나 통나무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이라 당일 예약이 가능했다. 땅거미가 진 시간, 오후 6시면 등산이 제한되지만 나는 선택 받은 사람처럼 매표소를 통과했다. 회동계곡의 개울물 내려가는 소리가 우렁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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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이 감질나게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달빛 아래 산속 새들이 잠을 자는 시간, 나도 산속에서 ‘파랑새’ 통나무집 둥지에 짐을 풀었다. 네 명 정원의 방을 혼자 쓰니 호젓했다. 혼자인 내가 안쓰러운지 새끼손가락 크기의 곤충 한 마리가 들어왔다. “같이 있을래?” 묻고 음식을 차렸다. 그런데 그 이름 모를 곤충, 방안을 날다가 자꾸 방바닥에 쓰러진다. 빈사 상태 같다. 어쩔 수 없었다. 조심조심 창밖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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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만찬(!)으로 차린 '아우라지 더덕 막걸리'와 제주도 소주 ‘푸른 밤’, 메밀 전병과 부침개 오천 원어치 안주. 여행 현지의 막걸리와 가고 싶은 곳의 소주가 만났다. 더덕 약주와 ‘푸른 밤’이 비워지며 밤이 깊어갔다. 생각도 깊어지고 잠도 깊었다. ‘깊고 푸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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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로. 울창한 숲이 녹색댐임을 알게 되었다. 계곡물이 찼다. 산이 품고 있다 끊임없이 내보내는 물이다. 저 계곡물은 동강으로 흘러들고 한강이 될 것이다. 나도 시원한 물 같은 무언가를 품고 있다가 내보낼 수 있기를. 내게도 댐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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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등산로는 고사목이 드리워진 으스스한 개울 터까지만 올랐다. 내려와 대신 포장이 되어 있는 산길을 계곡물 따라 올라갔다. 아득한 녹색길이 계속되었다. 겨울 때 가장 그리운 풍경. 걷다가 꽃과 풀이 유혹하면 고개를 돌리고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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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산속. 내 눈 앞에 갑자기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아주 낡았다. 다리 건너편 숲에서 건너오라 유혹한다. 건넜다. 건너고 핸드폰을 보니 ‘제한구역서비스’ 문구가 떠 있었다. 핸드폰이 구실을 못하는 곳.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순간 말벌이 내게 다가왔다. 충분히 습격할 수 있었는데, 안쓰러운지 나를 훑고 그냥 가버린다. 키 큰 나무들 아래에서 한참 머물렀다. ‘제한구역서비스’ 구역은 문명으로부터의 도피처다. 자주 들르면 좋을 소도(蘇塗)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쳤지만 은밀한 자연을 더 즐기기로 하고 덮었다.


내려갈 때라고 마음이 다독인다. 다리를 건너 다시 서비스 구역으로 나섰다. 포장이 돼 있는 길,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길을 따라 세상 속으로 내려갔다. 이름 모를 새가 '청청청' 하고 울며 잘 가라 한다. 정류장 앞, 또 한참 시골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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