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무더위 속에서는 흐린 날씨가 복스럽다. 정선 가는 날이 그랬다.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줘 반팔 차림을 가려줘야 할 정도였다.
정선행 28인승 버스. 뒷부분 오른쪽 단일 좌석을 차지했다. 사무실처럼 아늑했다. 나처럼 창턱의 수첩과 펜도 폼나게 창밖 시원스러운 한강 풍경을 즐기는 눈치다.
정선에 도착해 버스터미널에서 읍내로 걸어가는데 꽉 잠그지 않아 한두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수도꼭지 물 같은 빗방울이 흩날렸다. 우산 펴기가 무안할 만큼만 흩날렸다. 동강을 가로지르는 정선제1교를 건너면서 설렜다. 첫날은 읍내만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예전 모습을 다시 볼 기대 때문이었다.
정선읍사무소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지방에서는 ‘행정복지센터’라는 명칭으로 바뀐 모양인데 내겐 읍사무소가 익숙했고 이곳에는 두 가지 명칭이 다 사용되고 있다. 정선아리랑의 본거지답게 곳곳에서 정선아리랑 구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이처럼 한이 느껴지는 구절들이 정선아리랑에는 많다.
샛길로 빠지듯 골목길 들어가기 좋아하는 나는 정선중고등학교가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은은한 향이 풍겼다. 인동덩굴 울타리다. 술을 단 리본 같다. 향내가 좋아 금방 자리를 뜨지 못한다.
막다른 골목 어귀에 토마토 화분과 고추 화분이 기다란 벽돌 담장 밑에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었다. 토마토꽃을 처음 보았다. 노란 꽃잎들 벌어진 모습이 이곳에서 한껏 본 날쌘 제비 같다. 하얀 고추꽃 따라 녹색 고추가 굵기를 더해가듯 노란 토마토꽃 따라 녹색 토마토 알이 굵어지고 있다.
화분의 주인집 담장 위에는 뾰족한 병조각 대신 분재 화분이 올려져 있었다. 담장이 정겨워서 도둑이 들려고 해도 들지 못하겠다. 분재를 얹은 담처럼 자신을 고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시골 단독주택답게 장독대도 있다. 장독대 있는 풍경이 살갑다.
이곳 도서관은 ‘교육도서관’으로 부른다. 부모와 영유아가 같이 책을 볼 수 있는 곳을 ‘책읽는 가족실’이라고 이름 붙여 또한 남달랐다. 옹알거리는 소리, 자상한 음성, 호기심 어린 물음이 들리는 방. 소리가 허락될 뿐 아니라 권장되는 방. 정선교육도서관 뒤쪽 창으로 도서관의 주민인 책들이 보였다. 도서관이 쉬는 날이었다. 책들이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고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심심해하는 날.
뜻밖에도 정선 읍내에는 영화관도 있었다.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영화관 이름이 ‘아리아리 정선 시네마’다. ‘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업체다. 스크린이 두 개뿐인 작은 규모지만 <기생충>을 비롯해 개봉작을 당당하게 상영하고 있다. 시중 영화관보다 관람 요금이 훨씬 저렴하다. 일반 영화가 6천 원. 이곳을 발견하고 난 다음날 땡볕을 피해 이곳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2천 원. 군 단위에 맞게 만들어진 멋진 작은영화관이다.
‘보고 싶다 정선아’. 바로 정선군의 정선 여행 홍보 문구다. 팸플릿에도 당당하게 쓰여 있다. 전국에 수많은 ‘정선’씨가 있겠지만 내가 보고 싶은 정선은 강원도 정선, 골목이 예쁜 정선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