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

by 박태신

지금은 택도 없지만 2000년대 초중반 나는 혼자 지방을 여행하다 간혹 히치하이킹을 하곤 했다. 대중교통편이 없거나 끊겼을 때, 그러니까 달리 방도가 없을 때 그랬다. 지금보다는 젊고 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걸어도 전혀 두려움을 못 느꼈다. 요즘은 국도에서 차를 세워줄 아량이 있는 풍토도 아니고, 그러다 큰일 날까 겁나는 세상이 되었다. 나로서도 다시 그럴 엄두가 나지 않고.


히치하이킹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선택은 농부 아저씨가 모는 시골 트럭을 세워 부탁하는 것이다. 그땐 웬만하면 태워주었고 편하게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어쩌다 젊은 남녀가 모는 승용차를 탄 적이 있는데 괜히 쭈뼛해지고 부담도 살짝 갔다. 그렇게 청량산에서 예쁘디예쁜 비구니 절 불영사를 갔다.


세상에서 경찰차를 히치하이킹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봉평 ‘허브나라’(지금은 ‘허브나라공원’)을 관람하고 나서다. 무작정 농원 앞 홍정천을 따라 걸어 나왔다. 버스는 끊긴 지 오래. 그저 걸어가면 되겠지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꽤 길었다. 봉평 읍내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허브나라 직원 차량도 가 버린 시간, 지나가는 차가 없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차 한 대가 내 앞을 지나 허브나라 쪽으로 향해 들어갔다. 지금은 길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엔 그 당시 허브나라가 거의 도로 끝부분에 있었고 그래서 내심 저 경찰차가 그곳까지 순찰하고 되돌아 나오리라 기대했다. 역시나 내 기대대로였다. 용감하게 경찰차를 세우고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경찰관 아저씨는 나를 뒷좌석에 태워주었다. 내 생애 단 한 번 타본 경찰차다. 그렇게 정겹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봉평 읍내까지 왔다.


그런데 경찰차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경찰차는 뒷좌석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도록 돼 있다.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는 걸로 기억한다. 용의자(?)가 문 열고 도망가면 안 되니까. 보조석에 앉아 계시던 경찰관 아저씨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때 내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황송할 따름이지만 꼭 무슨 고위직 장(長)급에 있는 사람이 내릴 때의 기분? 정말 고마운 일이었고 잊히지도 않을뿐더러 다시 하기 힘든 경험이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이런 경험도 있으니 한번 더 들어보시라. 2005년 봄날 구례 산수유마을에서 1박 하고 다음 날 하동 쌍계사에 들렀다. 벚꽃 절정기 즈음이었던 것 같다. 쌍계사와 그 아래 섬진강 벚꽃은 유명하지 않은가? 구경 후 노래로도 유명한 화개장터로 내려왔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하동에 가서 열차를 탈 계획이었다. 봄 풍경 명소이니 당연히 ‘인파’와 ‘차파’로 넘치고, 길이 막혀서 그런지 버스가 오지 않는다. 열차 시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히치하이킹!


아무 차든 멈춰 서 주었으면 하는데 야박하게 안 서 준다. 초조하던 차에, 갑자기 창을 검게 선팅 한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내 앞에 섰다. 너무 근엄한 차가 서는 바람에 나는 내심 당황했다. 조금 긴장하며 뒷좌석에 올랐다. 그런데 옆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내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창 쪽으로 몸을 옮겨 앉는 것이 아닌가? 앞좌석엔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고.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 부인쯤 되는 사람의 차를 탄 걸로, 대화 분위기 상 앞 두 사람은 그 부인의 자식 내외 정도로 짐작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잡혀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속으로 ‘큰일 났구나’ 여기며 기죽고 있는데 그 하얀 소복 입은 여인이 그 당시 유행했던 폴더폰을 탁탁 소리 내며 연신 접었다 펼쳤다 한다. 마치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겁을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용기 내 물었다.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뜻밖에도 “촬영하러요!” 그 답변을 듣고 고개 들어 그 하얀 소복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탤런트 김미숙 님이었다!


앞좌석의 젊은이들이 웃어댔다. 그 두 사람은 그러니까 매니저와 코디였던 것이다. 당시 김미숙 님은 대하드라마 <토지>를 촬영하고 있던 중이었다. 목적지는 하동 ‘최참판댁’. 잠깐 짬이 나 쌍계사 나들이를 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그러다 나를 태운 거고. 마음이 안도가 되고 나니 직업, 여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촬영장에 도착했다.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는 하동역으로 걸어갔다.


이날 ‘사건’이 김미숙 님 주변 사람들에게 회자된 모양이다. 3년 후 2008년 내가 방송대 학보사 기자로 근무했을 때다. 특집 기념으로 여러 비중 있는 인물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기획안이 있었다. 그래서 김미숙 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려 했다. 김미숙 님이 방송대 유아교육과를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미숙사랑’이라는 팬클럽 카페가 있었다. 그걸 알아내 카페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안타깝게도 김미숙 님은 외국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담당자도 화개장터에서의 사연을 알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웃음 짓는 소리가 넘어왔다.


이런 경험을 누가 하랴 하고 나는 자부심(!)을 갖곤 한다. 대민봉사(!)를 제대로 하신 고마운 경찰관 아저씨, 그리고 지금도 궁금한데 널리 알려진 공인이면서 쉽게 옆자리를 내주는 결정을 해준 한 연예인과의 만남. 이런 추억이 있어 예전 여행이 더 살갑게 여겨진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를 두며 아주 조심스럽게 여행해야 하는, 그것도 만류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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