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이고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40대 중반에 부산에 내려가 생활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4년 2월이다. 그날 본 아름다운 장면을 소개한다.
매화가 피었다. 학교 식당 창 너머로 망울져 있는 목련꽃 봉오리가 언제 벌어지나 기다리다 목련보다 앞서 피는 매화를 잊고 있었다. 그 매화를 처음 발견했다. 졸업식 날에 말이다. 겨울을 졸업하고 봄에 입학하려는 자연이 띄운 편지다.
졸업식에 참석했다. 산등성이에 지어진 부산대학교 맨 꼭대기 부지에 있는 체육관에서 졸업식이 있었다. 안 가도 무방하지만 가고 싶었다. 가운을 걸치고 북적거리는 식장에 들어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인증 샷도 찍고 졸업장도 받았다. 그리고 고급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줄곧 수첩에 메모를 하곤 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린, 나보다 열네 살 젊은 대학원 동료가 건네주었다. 혹시 몰라 졸업논문 두 부를 가지고 왔는데, 동료와 동료의 친구에게 선물했다. 이제 정말로 한 종지부를 찍었다고 동료가 말해 주었다. 오길 잘했다.
다대포 해수욕장에 갔다. 겨울에 말이다. 점심식사 때, 오늘 같은 날 기념으로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싶다고 했더니 동료가 추천해 준 곳이다. 그래 봤자 부산시 아래 자락에 자리 잡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데, 완공되고 나면 더 쉽게 찾아갈 수 있겠다(2017년 4월 완공됐다). 솔직히 말하면 해운대보다 백 배 더 좋았다.
비행기를 많이 보았다. 10여 분마다 김해공항에 착륙할 포즈를 취한 비행기들이 바다 쪽에서 줄기차게 날아왔다. 작년 어느 날인가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보고 싶어 김해공항을 찾아간 적이 있을 정도로 나는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 많이 태우고 가는 항공기를 좋아한다.
물이 빠져나간 해수욕장 백사장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나처럼 자축할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바닷가가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지. 지하철 공사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게 바닷가 앞에 다가갔는데, 정말 어머니의 품처럼 다대포의 바다는 넓고 넓었다. 동해 바다가 깊다고 한다면 남해 바다는 넓다고 하겠다. 근처 몰운대 언덕은 우리나라에서 동해 바다와 남해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넓은 남해 바다에 더 반했다고 말하겠다.
금세 배가 꺼져 요기도 할 겸, 해가 질 때도 기다릴 겸 상가 쪽으로 나와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시원한 대구뽈찜탕을 주문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2층 너른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한참을 있었는데, 친절한 주인장 덕택에 미안한 마음 갖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찾아간 바다는 일몰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만에 일몰을 보는지. 조금은 흐린 날씨였지만, 그런 대기를 뚫고 붉은 태양빛이 번쩍이며 하강하고 있었다. 일몰 때의 태양은 사람들 눈을 해치지 않는 겸손해진 태양이다. 한참을 바라봐도 눈부시지 않다. 태양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사진기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이제 태양은 맞은편으로 보이는 섬 가덕도의 산등성이 사이로 들어가려 한다. 그곳이 자신의 집인 듯싶게 말이다. 바다 위에 아름다운 잔광과 노을을 남기면서 들어간다. 나도 집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졸업하는 날에 일몰을 보았다. ‘졸업’과 ‘일몰’은 끝이라는 의미에서 닮은 구석이 있는 단어다. 휴식이라는 뉘앙스도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두고 있는 미래형의 단어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축도 하고 위안도 하기로 했다.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겠다. 낮에 매화 핀 것을 보았으니 더 그러하다. 이제 봄이 시작되려 한다.
나의 막내 제수씨가 6월 기말고사를 끝으로 방송통신대 교육학과를 졸업한다고 전해주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며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제수씨는 이미 유아교육과를 이수한 상태다. 졸업하면 방송대 사회복지학과나 청소년교육과에 편입할 포부를 지니고 있는데, 청소년교육과를 전공하고 나면 조카들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지지 의사를 표했다. 한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제수씨에게야말로 졸업이 시작인 셈이다. 나의 제수씨도 내 ‘브런치’ 구독자다. 일몰 사진을 보여주며 축하한다고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