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청계천이 있다면 공주엔 제민천이 있다. 둘 다 오랜 재생 사업을 통해 깨끗한 하천이 되었다. 한두 가지 차이점을 꼽아 본다.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빌딩 숲 사이에 있고 화려한 시설들이 가득하며, 한강물을 끌어와 정수해 내보내는 인공미 가득한 하천이다. 반면 제민천은 소박한 서민들이 사는 주택가와 작은 상가들 사이에 있고, 하천 물은 ‘공주산림휴양마을’ 아래의 금학생태공원 내 저수지에서 발원해 도심을 지나 금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자연 하천이라는 점이다. 공주시는 2014년부터 공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제민천을 따라 흐르는 문화골목 만들기’ 사업을 해왔고 그 결과 제민천 주변은 산뜻하면서 사람 냄새와 추억이 가득 밴 하천가가 되었다.
우선 아침 식사를 위해 공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다는 제민천 가 칼국수 집 ‘고가네 칼국수’를 찾았다. 아름드리 정원 옆,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식당 안으로 신발 벗고 들어갔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우리 밀은 불지 않아요” 하고 주인장이 자랑한다. 모든 재료가 국산이다. 내 앞에서 칼국수 재료들이 진득한 시간 동안 끓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맛있게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반찬으로 나온 겉절이를 오래 씹어보기도 했다.
식당 창문가 옆으로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의 손글씨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가시방석 자리가 꽃자리란다. 정말로 가시방석을 꽃자리로 여길 수 있다면…… 살다 보면 부담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거나, 초라하거나 힘겨운 삶의 자리에 오래 머물러야 할 때가 많다. 그 자리를 긍정하고 마음의 분위기를 꽃으로 장식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정성껏 끓인 칼국수를 먹은 이 자리가 꽃자리인 것은 분명했다.
제민천 옆 주택가 담벼락에는 수수한 벽화들이 수두룩하다. 화려하거나 원색적이지 않다. 공주의 시인 나태주 시인의 시가 자리를 자주 차지하고 있다. 쉽게 읽히는 시로 감동을 주는데 더욱이 공주와 제민천을 소재로 한 시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봄소식 제민천’이 그렇다. 사진 속 시를 읽어보시길.
교복 입은 고등학생 벽화와 숙박이 가능한 ‘공주하숙마을’ 시설은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어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우리도 그런 시절을 보냈는데 시간에 쫓기고 최신 기술문명에 사로잡혀 살면서 그 시절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핸드폰 보는 시간을 많이 줄였다. 산책 나갈 때는 핸드폰은 두고 대신 책과 메모지를 들고 나간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때는 아예 핸드폰을 끄고 맡겨 놓아야 한다. 핸드폰과 거리가 멀어질 때가 잦아지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왕이면 평온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지만.
더위를 피하고 내 몸에 쉼을 들이기 위해 이름도 예쁜 ‘눈썹달’ 카페에 들어갔다. 제민천 가의 신식 한옥 카페다. 점심시간 때라 카페 안이 북적였는데 마침 다락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 시간 가량 이 다락방을 독차지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실내 인테리어를 살폈고 메모도 했다. 신발 벗고 들어가 앉은뱅이책상과 마주하며 선풍기 바람을 쐬니 여름날 이보다 더한 호사가 없었다.
근처에 ‘공주 역사영상관’이란 곳이 있다. 100여 년 된 붉은 벽돌 건물인데 읍사무소였던 곳을 탈바꿈시켰다. 공주의 역사, 종교, 유적 등을 영상물로 보여주는 독특한 곳이다. 2층에서 교육도시인 공주의 근대 시기 학생들 사진과 금강철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배다리 사진을 보았다.
제민천에서 조금 걸어 나와 공주사대부고 옆에 있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찾았다. 2014년에 개관했고 70십대 중반인 나태주 시인이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이다. ‘나태주문학관’으로 이름 지어도 무방할 정도로 시인과 관련된 물품들이 가득한데 시인은 아예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대신 자기 시의 ‘풀꽃’을 내세웠다. 시인이 그림도 그린다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직접 펜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넣은 시화 작품들을 몇 점 사진으로 ‘훔쳐’ 왔다. 시인은 2007년 급성복막염에 걸려 소생 불가능 진단까지 받은 적이 있는데 자신을 믿고 열심히 치료한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투병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도 고백했다. 그런 시인의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가 지난달 올해 소월시 시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제민천 하류 근처에 공주중학교가 있다. 이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눈에 익은 이의 사진을 보았다. 박찬호 선수다. 류현진 선수의 올스타 참가 확정 뉴스를 접하던 날 이 사진을 보았다. 사진 뒤 운동장에서는 성인보다 키가 더 큰 공주중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박찬호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를 KBS TV로 즐겨 보았더랬다. 그땐 그게 큰 즐거움이었다.
이외에도 제민천 주변으로 공산성, 공주 중동성당, 공주 산성시장,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송산리 고분군 등 둘러볼 곳이 많다. 굳이 시외로 멀리 나갈 것 없이 공주시 제민천 주변만 둘러봐도 하루가 짧다. 공주는 제민천이라는 동맥을 통해 살아 움직인다. 제민천 주변은 삶과 문학과 추억이 소박하게 어울려 있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제민천 가 벽화에서 접한 나태주 시인의 시 ‘마음의 땅’을 소개한다.
공주는 공주에서 사는 사람조차
그리운 고장
날마다날마다 돌아가 안기고 싶은
옛날이 있다
차령산맥 넘어 정안
후유, 쓸어내리는 가슴
마티재 계룡산 넘어 금강물만 만나도
와락, 눈물이 날 것 같은 철없음
그래서 공주는 공주사람 아니어도
살고싶은 고장
공주에서 사는 것이 그에게는
평생의 소원
끝끝내 죽어서도 뼈를 묻고 싶은
마음의 땅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