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동안

by 박태신

하룻밤 자고 오거나 당일 날 오고 갈 나만의 여행지가 있다면 어떨까. 내겐 함양이 그런 곳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 반 정도 걸리니 결코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무언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거나 다짐을 할 때 일상을 내려놓고 다녀오는 곳이다. 그래 봐야 1~2년에 한 번 꼴이지만 갔다 오면 마음은 탱탱해져 있다.


읍치고는 큰 편인 함양군 함양읍을 가로질러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그 유명한 상림(상림공원)이다. 내게 상림은 내 삶의 수도원 같은 곳이다. 삶의 방향을 되묻고 자연스레 재다짐하는 곳이다. 내게 기도라고 하는 것은 내 하고 싶은 말과 청원을 전하는 것보다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묻고 듣는 신과의 소통 방식이다. 어떤 바람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저 그때그때 나만의 길을 잘 선택해 나갈 것을 기원한다. 일상에서도 그렇게 하지만 상림은 그런 선택을 재확인하는 실제적이면서 상징적인 장소다.


지난주 들른 상림은 여전히 싱그러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림 초입, 올 때마다 지나가곤 한 덩굴 울타리 ‘머루터널’에 녹색 머루가 잔뜩 열려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근처 광장은 9월 6일부터 시작되는 ‘함양 산삼 축제’를 위한 부스를 설치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 먼저 ‘물도둑’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상림 약수터를 찾았다. 한때 함양에 머물 동안 내게 겨울 식수원이 돼준 곳. 시원한 약숫물을 바가지로 받아 마셨다.


길쭉한 상림 숲을 왼쪽에 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유명한 곳이지만 인파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은 없다. 정확하게는 함양읍과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산책과 걷기 운동을 하는 곳에 가깝다고 할까. 그만큼 한산한 분위기 속에서 돌아볼 수 있다.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다. 보물이다. 신라 시대인 890년경 이곳 태수였던 최치원이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려고 조성한 인공 숲이다. 당시 마을 중앙을 지나며 홍수 피해를 주던 위천의 물길을 밖으로 돌리고 둑을 싼 다음 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의 상림이다. 그러니까 상림은 천 년이 넘은 숲이다. 이 안에 있는 나무들은 건드리면 안 된다. 한 그루 한 그루 소중하게 관리되는 보호림이다. 방문객들은 정해진 산책로로만 다녀야 한다. 그래도 상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햇빛이 어느 정도 차단돼 어둑하기까지 한 흙바닥 산책로가 있어 고즈넉하게 상림 속살을 살피며 거닐 수도 있다.


바깥 산책로를 한참 걷다 보면 하얀색 벽과 밤색 지붕의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물레방아를 형상화했는데 그래서 이름이 ‘물레방아 화장실’. 비밀 한 가지. 시골 여행 중 처음 접했는데 이곳은 서울 지하철 화장실처럼 휴지통이 없는 화장실이라는 점! 이용해 보시길.


상림 끝부분에는 물레방아와 방앗간이 있다. 물레방아는 함양의 상징물 중 하나다. 연암 박지원이 이곳 현감 시절 국내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든 것에서 연유한다. 산책로 곳곳의 가로등 문양에도 물레방아가 들어가 있다.

이제 유턴해 상림 속 산책로를 걸었다가 오른쪽에 위천을 끼고 있는 산책로로 나선다. 왼쪽은 길쭉한 상림, 오른쪽은 위천이다. 이 길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길이다. 가끔 벤치에 앉아 강물과 맞은편 지리산 산자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녹색과 물색과 햇빛의 하얀색이 같이 있어 마음이 쾌적해지는 산책로다.


저만치 2013년에 만들어진 다리 천년교가 보인다. 상림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천의 다리다. 천 년 전 건너편 동네에 사는 한 총각이 함양의 처녀를 만나러 매일 밤 위천을 건넌다는 소식을 들은 최치원이 이 둘만의 돌다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걸 기념해 만든 것이다.


다리도 멋지게 만들었지만 더 좋은 것은 이 다리 중간 전망 터에서 상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이 자리다. 나중에 사진으로 다시금 다시금 보고 싶어지는 아득한 숲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7월과 8월 이때가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때다. 조금 더 일찍 오면 대규모로 조성된 상림 바로 옆 연꽃 밭에서 수많은 연꽃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에도 그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천 년 동안 사람들이 보았던 아름다운 숲 풍경.

상림을 둘러본 다음에는 동네 이곳저곳을 유람한다. 추억을 되살리며 이곳에서 다시 살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그리고 단골(?) 술집에 들러 알탕 같은 안주를 시켜 술을 마신다. 마치 이곳의 거주민처럼. 그리고 이곳의 유일한 찜질방에 가서 밤을 보낸다. 술을 마셔 눈치가 보이지만 한 번도 출입을 거절당한 적이 없다. 2005년 남원의 ‘혼불문학관'을 들르고 무작정 처음 들른 이 소도시 버스 터미널에서 창구 여직원에게 민박집이 어디 있는지 물었더랬다. 여직원은 친절하게 이 찜질방을 안내해 주었고 덕분에 저렴하게 하룻밤을 머물 수 있었다. 그 후 함양에 올 때마다 이곳을 숙소로 이용했다. 이번 발걸음에도 예정에 두었다가 당일로 올라와 버려 겉모습만 보고 말았지만.


마지막으로 아픈 이야기를 한 가지 해야겠다. 여러 번 상림에 왔지만 처음 보았다. 한 나무가 고사돼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다. 보물 나무여서 베어진 것이 이해가 안 됐다가 고사목 그루터기 앞의 안내판을 보고 이해를 했다. 아마도 이 나무의 죽어갈 때 속마음은 자신이 다른 나무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을 터. 그리고 군청에서 공식적인 명목으로 벤 것이고. 고사목을 없애고 다른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남기고 연유도 남겨 놓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 나무는 얼마나 살다 간 것일까. 이 숲의 나이처럼 천 년을 살다 간 것일까. 상림은 오래전 홍수로 숲 일부가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상림(上林)’이라는 이름도 위쪽 숲이라는 뜻이고 아래 숲(하림)은 많이 훼손되었다. 천 년 동안 상림은 주위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전쟁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불이 날 뻔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잘 살아남아 내게 오랜 기간 사색의 장소가 돼준 상림이 고맙다. 천 년을 살았으니 나 같은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보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내게, 나와 같은 이들에게 그래 주기를. 앞으로의 천 년 동안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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