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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May 17. 2019

‘센티멘탈 자니’와 ‘엽서하기’

내 글 시리즈 제목의 ‘엽서하기’라는 단어는 박인환의 시 ‘센티멘털 자니’를 음미하고 마음껏 상상하다가 만들어졌다. 이번 글에서는 이 시와 이 시에 대한 느낌 글을 소개하겠다.      


‘센티멘털 자니’    


주말여행

엽서葉書……낙엽落葉

낡은 유행가의 설움에 맞추어

피폐한 소설을 읽던 소녀.     


이태백의 달은

울고 떠나고

너는 벽화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숙녀.    


카프리 섬의 원정

파이프의 향기를 날려 보내라

이브는 내 마음에 살고

나는 그림자를 잡는다.    


세월은 관념

독서는 위장

그저 죽기 싫은 예술가.    


오늘이 가고 또 하루가 온들

도시에 분수는 시들고

어제와 지금의 사람은

천상유사를 모른다.    


술을 마시면 즐겁고

비가 내리면 서럽고

분별이여 구분이여.    


수목은 외롭다

혼자 길을 가는 여자와 같이

정다운 것은 죽고

다리 아래 강은 흐른다.     


지금 수목에서 떨어지는 엽서

긴 사연은

구름에 걸린 달 속에 묻히고

우리들은 여행을 떠난다.    


주말여행

별 말씀

그저 옛날로 가는 것이다     


아 센티멘털 자니

센티멘털 자니        


‘센티멘털 자니’는 운치 있는 여행(저니, journey), 감상적인 여행이다. 시인이 하는 이 여행의 핵심어를 정한다면 그건 ‘엽서’다. 엽서(葉書)는 “잎 크기의 글, 편지”를 말하지만 “잎에 쓴 글”, 또는 한자식 어순과는 맞지 않지만 “잎에 글을 쓰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서(書)’에는 ‘글’과 ‘쓰다’의 뜻이 다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엽서’ 옆에 ‘낙엽’을 적어놓았다. 이때 낙엽은 굳이 가을날의 낙엽(말라서 떨어진 잎)일 필요가 없다. 잎은 바람이 불면 어느 때든 떨어질 수 있으니까. 또는 엽서로 삼기에 좋은 것을 부러 손으로 딸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센티멘털 자니’는 “나무들이 있는 곳(자연)에서 낙엽에 글을 쓰는 행위”가 된다. 잎이나 수첩에 글을 쓰면서 갈 수도 있지만 이미지와 함께라면 걷기 그 자체가 글쓰기가 된다. 그래서 ‘센티멘털 자니’를 ‘엽서하는 여행’이라는 말로 바꿔본다. 마음이 무거울 때 엽서하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자주 엽서하는 유희를 즐길 일이다.

   

그런데 엽서하다는 짧은 글을 쓴다는 말이다. “지금 수목(나무)에서 떨어지는 엽서”에는 짧은 글을 쓰고, “긴 사연은 구름에 걸린 달 속에” 묻으며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달은 밤새 하늘을 떠다닌다. 달을 노래하던 방랑시인 이태백은 달에 슬픈 ‘긴 사연’을 담았기에 달은 “울고 떠나고” 만다. 박인환의 달도 마찬가지다. 6.25 때 친구들이 죽고 도시는 황폐화되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그런 슬픈 사연을 묻었기 때문이겠다.    


그래도 시인 옆에는 담배 피우며 자신을 바라다보는 숙녀가 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가 돌아온 것일까? 시인이 여행하며 하는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상상 속에서 “이브가 내(시인의) 마음에 살고” 있다. 갈 수 없거나 가기가 정말 힘든 낙원,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식물이 분포돼 있다는 카프리 섬일지라도 그곳 원정(園丁 : 정원사)에게 쉬는 시간이 되면 "파이프 (담배의) 향기를 날려 보내라"고 겁 없이 요청할 수도 있다. 센티멘털 자니는 상상의 여행이다.


당연히 여행할 때 “술을 마시면 즐겁고 비가 내리면 서럽”다. 시인의 여행이 감상적일 때 “세월은 관념”화돼 잠시 흐름을 멈추고, 시인은 그 멈춘 세월 속에서 예술가처럼 보이기 위해 독서로 ‘위장’한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자연 속에서의 독서는 영감이 부여되는 행위가 아닌가. 시인에게는 시를 발굴하는 작업이겠다. 자연이 건네주는 온갖 빛깔과 소리와 향내의 이미지들이 읽고 있는 책 속의 활자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어 시인의 가슴에서 시어(詩語)로 변신케 해주기 때문이다. “죽기 싫은 예술가”는 자니를 떠난다.


그런데 여행 중에 만나는 “수목은 외롭다.” 나무는 원래 다른 나무와 거리가 가까운 걸 싫어한다. 가지를 뻗칠 자기 영역이 적어지므로. 또 나무는 자리를 옮길 수 없으면서 생명이 길다. 오래 살아도 “여자와 같이 정다운 것은 죽고(떠나버리고)” 말아 나무는 외로운 것이다. 그걸 아는 시인은 계속해서 나무를 찾아간다. 엽서 같은 가벼운 여행을 자주 간다. 그리고 나무에 시를 새긴다.


시인은 '주말여행'은 “별 말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곳을 가고 또 가는 여행이다. 센티멘털(감상적) 여행은 과거에 대한 회한을 곱씹는 발걸음이므로 “그저 옛날로 가는 것”이다. 옛날로 가서 엽서하고 달에 묻는 의식이다. “아 센티멘털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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