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

by 박태신

정선읍에서 아우라지(여량면)로 가는 국도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길이다. 여러 산자락, 철길, 도로, 하천이 나란히 또는 지그재그로 교차하며 달음질치는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선역을 지나 나전역을 거쳐 아우라지역으로 이어져 있는 철길은 ‘조양강’과 그 위쪽 물줄기 ‘골지천’이라는 하천을 여러 개 짧은 철교를 통해 하루 세끼 밥 먹듯이 건너고 또 건넌다. 터널 속으로도 지나간다.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철길은 내가 탄 버스의 오른쪽 하천 저 너머에 있더니 어느새 버스 왼쪽 산자락 옆에 신출귀몰하게 등장한다.


이번 달에 다시 갔을 땐 작년에 놓친, 제대로 된 이곳 풍경 담기를 다짐했더랬다. 그러나 만 4년 2개월째 쓰고 있는 내 핸드폰은 덜컹거리고 게다가 몹시도 빈번한 커브 길을 도는 버스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다 철교의 도드라진 다리 기둥을 발견하고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는 전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700~800밀리미터의 비가 내려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국토가 훼손되었다. 정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풍이 물러나고 어느 정도 지난 뒤 정선을 여행했을 때다.


정선역 바로 밑 하숙집에서 1박 하고 아우라지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나는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도로는 여기저기 깎여나가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운행해야 했고, 하천 위에는 밀려온 바윗덩어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철교와 다리 기둥이 무너져 있었다. 그 광경을 버스 안에서 직접 보았다. 위 사진 속 다리 기둥이 그걸 증명해준다. 그러니까 철길을 받히는 다리 기둥 중에 하얀색으로 칠해진 두 개의 기둥이 그 상흔이다. 열차는 2004년에야 다시 이 하천을 지나다닐 수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 폐결핵을 앓았다. 보건소에서 몇 개월을 약을 타다 먹었다. 그 당시 보건소 직원이 마스크 쓰고 유리창으로 밀폐된 공간 너머에서 타원형 창구로 조심스레 약을 내밀던 음습한 풍경이 기억난다. 알약은 얼마나 많았던지……그리고 완쾌됐다. 그 시절 이후 내 폐에는 하얀 흔적이 남아 있다. 찰과상이 아물면 남게 되는 자국과 비슷한 ‘석회화’라는 흔적이다. 40세 넘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에서 X레이 사진을 찍고 난 후, 석회화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결과지를 받곤 했다. 간혹 정형외과에서 다른 일로 X레이를 찍어 그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 몸에도 무너졌다 다시 세워진 다리 기둥의 하얀색 페인트칠과 같은 상흔이 있다.

작년 11월, 마음에 바람이 들어 제주도행 비행기를 정말 오랜만에 탔다. 운 좋게 김포와 제주를 오고 갈 때 창가 자리를 얻을 수 있어서 탑승 시간 내내 뚫어지게 창밖을 쳐다볼 수 있었다. 작고 작은 뭍 세상, 저만치 하늘 상행선을 줄지어 달리고 있는 비행기들, 태양이 비행기와 동행하다 먼저 하강하는 모습, 어느새 육지에서 바다로 바뀐 풍경을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처럼 호기심 가득 내다보았다.


창가에 눈을 떼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구름이 잔뜩 깔려 있는 파노라마를 비행 내내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곤 하는 성격이기에, 흐린 날씨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별을 보러 제주도행 티켓을 끊은 것이다(‘어쩌면’의 기대를 다소나마 품으며).



별은 논외로 한다. 구름 위를 떠다니던 비행기는 제주도에 가까워지자 하강 준비를 했다. 방향을 아래로 틀더니 비행기는 짙은 구름 속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구름을 뚫고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급강하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신기한, 흐린 날씨의 주역 속에서의 낯선 풍경이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쾌재가 나올 정도의 시간만큼 그랬다. 그리고 제주도의 도심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니 비행기는 속도를 늦추고 방향도 육지와 비스듬한 평행선을 그렸다. 이제 활주로로 향한다.


정선 올 때 들고 온 책 『명상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내용 중에 ‘3분간 자연의 일부가 되는 명상’이라는 기법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 사물 중 하나를 선택해 본인과 동일시하며 그 기분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책은 쓰고 있다.


나는 구름을 선택했다. 내 이메일 주소에 ‘구름’ 영자명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나는 구름을 좋아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상흔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비행기와 같은 거대한 물체가 자신을 동강내며 헤쳐 나가도 구름은 없어지지도 깊은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잠시 비행기 궤적에 따라 생채기가 있을 뿐 잠시 후 구름은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간다. 내가 그런 구름이고 비행기는 나를 압도하려 하는 스트레스, 분노, 머릿속 방해꾼이라고 상상해보았다. 이 명상을 잘할 수 있다면 내겐 상흔이 자주 생기지 않고 상흔의 주체도 이내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율동적으로 비행기를 내어보내는 구름의 묘미를 나는 배울 수 있을까?


지금은 쉬고 있어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지 않지만, 이 방법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다. 저자가 보증하니 믿어보는 것이다. 게다가 번역 일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로 염두에 두었던 예전 택배 물류센터가 그저께 코로나로 폐쇄되고 말았다. 일이 힘든 거야 감내하면 되지만 일이 없는 것도 문제다. 창밖 구름을 내 마음에 들여보내는 걸로 잠시 ‘한량’ 생활을 더하는 수밖에. 소망한다. 힘겨운 삶이라도 상처를 상흔으로 남기지 않는 구름의 넉넉함이 내 생활에 평형추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