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과 ‘때문’

by 박태신

대학 후배가 예산 수덕사 대웅전을 가보라고 내 ‘브런치’에 댓글을 달아주었다. 마침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계시처럼 행선지가 정해졌다. 후배 댓글 덕분에 다음날 수덕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강남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에 내렸다. 여기에서 군내 버스와 면내 버스를 연달아 타야 한다. 정류장을 향해 걷다 보니 충남도서관이 나타났다. 정말 거대했다. 거대한 충남도서관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을 해결하기로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도서관 속 풍경이 너무도 특이하고 신선했다. 볼일을 보고 현관문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말았다. 도서관 속 풍경이 나를 잡아당긴 것이다.


지어진 지 1년밖에 안 된 신식 건물이었다. 이용자들의 편의를 극대화해 시설을 만들었다고 할까. 서가는 빽빽하지 않았고 다양하고 멋진 책상과 의자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컴퓨터도 넉넉했다. 거의 뒤로 누워서 책을 보는 곳도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 같은 도서관이었다. 화장실 볼일 덕분에 1층에서 4층, 옥상까지 충남 도서관 전체를 호젓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햇빛 때문이었다. 지난 3월 말 아름다운 꽃 풍경을 보게 된 까닭은. 볕이 들지 않는 먼지 많은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맑은 하늘의 강렬한 햇빛이 그리웠다. 그날 햇빛을 쬐며 산수유의 속살, 기지개 켜는 개나리, 나의 올봄 첫 진달래를 보았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은 꽃 풍경까지.


지하철을 타고 젊은 시절의 모교 캠퍼스를 찾았다. 이곳에서 목련 꽃을 제대로 만났다. 고즈넉한 건물 앞 양지바른 곳에 햇빛을 잔뜩 머금고 피어 있었다. 목련뿐이었다면 금방 지나쳤을 텐데 그 아래 노란 수선화가 내 눈길을 끌고 말았다. 내가 주목한 목련나무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들 있었다. 신기했다. 위에서 바라보다 고개를 앞으로 숙인 수선화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안경을 벗고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가능하면 수선화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수선화의 모습이 달라졌다. 식탁에 마주 앉아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 같다.


노르스름하게 하얀 꽃과 노란색 꽃이 사이좋게 있었다. 여기에 오래된 하얀 건물이 배경이 돼주었고 그 셋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 저 건물은 문과대학인데 30여 년 전 내가 기웃거리곤 했던 곳이다. 동경의 대상인 국문학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덕분’은 긍정적인 표현에 쓰이고, ‘때문’은 부정적인 표현에 쓰인다. 나는 번역하거나 글을 쓸 때 이 점을 유념한다. 그런데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나타내기 때문에 긍정을 나타낼 때에도 쓰일 수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햇빛을 갈구해 외출했으므로 “햇빛 덕분에”가 아니라 “햇빛 때문에”라고 해야 한다. 문과대학을 기웃거린 것도 국문학과의 존재 때문이었다.


‘덕분’과 ‘때문’이 동색(同色)이 되는 경험을 했다. 많이 하면 좋을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