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오늘 새벽 퇴근 시간, 나와 더불어 태릉입구 노선 셔틀버스를 타는 동료 사원들이 수많은 타 노선버스들 옆쪽에서 길게 한 줄로 서 있었던 것이다.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늦장을 부리는 편이지만, 맨 앞자리든 맨 뒷자리든 사원들마다 선호하는 좌석이 있기 마련이고 밤새 일하느라 고된 몸을 조금 더 쉬게 하려고 일찍 버스에 오르는 이들이 대체로 많다. 느닷없는 일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 편인 나는 진풍경을 보았기에 신기해 했고 그저 놀란 제스처를 내보였을 뿐이었다.
우리 셔틀버스 기사아저씨는 내가 일하는 경기 이남 모 물류센터에 사원들을 내려놓은 뒤 버스를 근처 월세 숙소 근처에 주차해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청하신다. 노련한 운전 솜씨를 지닌 기사아저씨는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어기지 않는 한에서 가능한 한 일찍 물류센터에 도착하려고 하신다. 덕분에 우리 사원들은 조금 더 휴식을 취한 뒤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일한 타 센터까지 포함해 기사아저씨들이 중부고속도로 질주에 몰두하는 동안, 창밖엔 사계절이 최상의 느린 속도로 자신의 모습을 변모시켜 가며 내 눈을 호강시켜 주었다. 가을엔 꽃 대신 울긋불긋 단풍 색 계열의 나무 대궐 산야를, 겨울엔 머리숱 적은 이가 짧게 머리를 깎은 듯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봄엔 신기하게도 도로변 낭떠러지에 길게 무리를 이룬 등나무를, 여름엔 어디까지 진하게 보일까 고군분투하는 녹음을 보여주었다.
무더웠던 이 여름엔 바깥보다 진저리치게 무더운 탓에 비 올 때의 습도 상승과 별개로, 사람 땀이 인위적으로 높인 극강의 습도 때문에 에어컨 겸 제습기 기능의 이동식 에어렉스는 엄청난 양의 습기 물을 매일 쏟아내곤 했다. 센터 곳곳에 비치된 에어렉스에 가득 찬 습기 물을 여러 차례 거두어 버리는 일은 특정 사원들의 지겨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우리 기사아저씨는 아낌없이 버스 안 에어컨을 가동해 주었다. 대체로 센터의 기사아저씨들이 회사가 제공하는 금전적 처우가 많이 낮다고들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노선의 사원들은 자기네 기사아저씨가 에어컨을 켜는 데 자린고비 같은 인색함을 내보인다고 치를 떠는 모습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센터 사원들은 가끔 연장 근무를 하게 되면 그만큼의 수당을 보태 받지만 우리 기사아저씨 말로는 자기네들에게는 그런 것이 일절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누는 우리 기사아저씨는 에어컨 인심도 후했다.
그런데 그 기사아저씨가 숙소에서 그만 늦잠을 잔 것이다. 그래 봤자 아저씨는 부리나케 달려왔고 우리는 10여분 기다렸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10여분이 내겐 특별한 순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 시간 전쯤 쉬는 시간에 본 것이 아까워 몇몇 사원들에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해주었다. 오늘따라 밤하늘은 창공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느 절간 초보 스님이 졸면서 쓸어놓은 마당 정도의 맑음은 보여주었다. 하현을 향하는 달, 흐린 날에도 곧잘 보이는 목성, 겨울철 별자리의 대명사이지만 가을 초입인 지금은 새벽녘에 동쪽 하늘에서부터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오리온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준 것이다.
퇴근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는 입이 근질근질해 여러 사원들에게 저 반짝이는 녀석이 목성이라고 알려주곤 했지만 한 번 놀라할 뿐 그다지 관심을 보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여러 달 전부터 자정 이후 목성의 밝기는 덩치가 크고 기운이 넘치는 젊은이의 혈기와 다름없을 정도다. 금성과 토성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목성이 태양계에서 지구와 이웃한 행성이고 태양 빼고 가장 크다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그동안 핸드폰은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여러 사원들이 호기심 있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몇 분 동안 사람들의 고개를 뒤로 꺾게 만든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전부 우리 기사 아저씨가 늦잠을 잔 덕분이다.
미안해하는 기사아저씨는 우리를 태우고 전속력으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을 하면서까지 주행하셨는지 모를 정도로 아저씨는 평소 우리가 도착했던 때와 거의 같은 시각에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사원들은 대략 삼분의 일 정도다. 나도 그중의 하나다. 무뚝뚝함이 없는 기사 아저씨는 매번 그 인사에 답을 하신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밑질 게 없을 만큼 할 일을 다하셨다. 그뿐인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듯이 우리 몇몇은 핸드폰 따위의 은밀하고 작은 시야를 떠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고 우리가 죽어도 하늘 식구들이 여전한 행보를 할 드넓은 하늘을 잠시 바라볼 수 있었다. 밤하늘이든 낮 하늘이든 하늘을 보여주고 싶은 나로서는 수지맞은 장사다. 내일 아니 오늘 오후 출근할 때 기사아저씨에게 좀 더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