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가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의 힘

<성심당: 우리가 사랑한 빵집>(통영 : 남해의봄날, 2016)

by 희붐

어렸을 적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집 앞에 있는 산에 올랐다. 1시간 남짓 되는 짧은 길이었지만, 다녀오고 나면 어머니는 꼭 동네 빵집에 들러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사주셨다. 매주 빵집을 찾는 우리에게 빵집 아주머니는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듬뿍 뽑아주셨다. 양손에 묵직한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들고, 번갈아가며 베어 먹는 것이 일요일 우리 가족의 아침식사이자 더할 나위없는 만찬이었다. 지금은 철마다 페인트칠로 낡은 기운을 애써 지우고 있지만, 그때 아파트 단지는 사람들로 활기가 돌았고 나는 그 사이를 밝은 얼굴로 뛰어다녔다. 5학년 때 갑자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에도, 걸핏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빵집에 들를 수 있고,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을 확인할 수 있는 그때 말이다. 시간이 흘러 쇠락한 아파트 단지에도 다행히 빵집은 남아 우리 가족만 아는 추억을 품고 있다. 아주머니가 길게 뽑아주던 아이스크림 기계는 이제 없고, 앉아서 먹을 수 있던 공간도 사라졌지만 빵집은 여전히 각별하다. 문을 열면 곧장 맡을 수 있었던 바닐라 향은 몸 속 어딘가에 깊숙이 기억돼, 비슷한 향만 맡아도 어린 시절 기분 좋았던 때로 나를 데려가주곤 한다. 빵집에서 만든 추억은 시간이 지나 가족의 이야기가 되어 남았다. 이야기는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비록 우리 가족이 매일매일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을 지라도, 일요일마다 우리가 만든 작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삶을 지탱하는 달콤한 힘이 되었다. 오래 자리를 지키는 가게에는 사소한 추억처럼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을 것이다. <성심당: 우리가 사랑한 빵집>은 대전에 자리한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지역에서 만들어온 역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심당은 빵집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라지 않게 본래의 모습을 이어나가며, 오래된 가게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나아가 나눔의 경제를 앞장서서 실현하며, 자본주의 시장의 대안으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사실 지역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 상업 공간이라는 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관점은 아니다. 동네 빵집과 다르게 성심당은 전국적으로 ‘튀김소보로’를 유행시킬 정도로 규모가 있는 중견빵집이니깐 말이다. 이 또한 브랜드 마케팅의 전략이자, 이야기라는 껍질로 또다른 본질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 먼저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의 이야기 중 아름답고 진실 된 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삼풍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상업 공간에 담긴 자본의 욕심은 추악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1995년 6월 29일 퇴근길 뉴스를 뒤덮은 대규모 붕괴 사고는 504명의 사상자를 내며 조각조각 아픔을 남겼다. 거액의 배상금을 내는 게 아깝다고 오열하던 삼풍백화점 회장의 외침은 두고두고 남아, 희생자를 상처 입히고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했다. 삼풍백화점은 ‘인간은 탐욕적이고, 자본은 잔인하다’는 사회의 정설을 남기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아수라장의 그곳은 이제 없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와 거품 경제가 쌓고 간 불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이 견고한 장막을 비집고 나온 것이 바로 <성심당: 우리가 사랑한 빵집>이다. 성심당은 빵집을 찾는 이들에게 달콤한 기억을 선사하고, 기업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다는 멋진 사례를 써내려가고 있다. 지역의 구성원들이 평생 동안 품고 있는 이야기가 동네 빵집에서 만들어진다는 데 남다른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한국전쟁 시기 이북에서 내려온 성심당의 창업주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파는 것부터 시작한다. 고향에 모든 것을 놓고 떠나온 그가 선뜻 밀가루 두 포대를 내어준 이웃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성심당의 출발이다. 매일 가난한 이웃들에게 빵을 배달하고,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시위대에 빵과 물을 몰래 나눠줬던 건 성심당의 기틀을 설명할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다. 현재 성심당 본점이 자리한 대전시 중구 은행동 거리는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가득 차 종종걸음으로 겨우 발을 뗄 수 있지만, 1990년대 프랜차이즈 빵집의 등장과 둔산신도시의 개발은 은행동과 성심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심당을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만들려던 창업주의 막내아들이 부도를 냈고, 2005년에는 성심당 본점이 전소되는 큰 화재를 겪는다. 빵집 건물을 휘감는 검붉은 화마를 보고 경영진이 끝을 결심하고 있을 때, 직원들은 힘을 합쳐 검은 재를 치우고 중고 제빵기계를 구입해 6일 만에 다시 빵집을 오픈한다. 얼싸 안고 서로의 힘을 확인한 직원들과 경영진은 성심당의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다. 바로 ‘모두를 위한 경제’로 경영의 관점을 전환한 것이다. 창업 초기부터 밀가루 두 포대의 신념을 가지고 있던 성심당이었지만,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모두’의 관점을 다잡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포콜라레’라는 공동체 운동에서 나온 것으로, 기업이 경영을 통해 인류의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경제 개념이다. 이때부터 성심당은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고, 투명 경영, 높은 윤리성, 정직한 재료 사용과 자연보호, 내부 소통, 전문교육 지원 등의 원칙을 만든다. 이를 통해 성심당은 빵집을 넘어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기업으로 거듭난다. 304쪽에 달하는 책을 읽으니 대전에서 만난 성심당은 단순히 히트빵을 파는 빵집이 아닌 생동감 있는 직원들이 있고, 손님들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의자를 넉넉하게 마련해두고, 노점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위해 수도꼭지를 내어놓는 지역의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빵집 한편에 60년의 이야기가 책으로 꼽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해 지역의 둘레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게다가 그곳이 빵집이라면 얼마나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나는 지, 우리는 <성심당: 우리가 사랑한 빵집>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빵집에 담긴 60년의 이야기에는 빵집의 경영을 지탱하는 나눔 정신이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을 매개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눈 따뜻한 추억이 담겨져 있다. 은행나무가 가을에 노란 잎을 뽐내는 것은 여름철 많은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또 단풍이 남쪽으로 물들어가는 속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와 딱 맞는다고 한다. 오래된 가게는 그 자체로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전을 지킨 빵집, 성심당이 만든 이야기는 단풍이 퍼지는 인간적인 속도로 타박타박 퍼져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이야기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