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퍼지는 세상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경남 : 피플파워, 2017) 서평

by 희붐

'퍼지다'는 동사를 좋아한다. 쌀이 충분히 퍼지면 밥맛이 살아나고, 찌개 냄새가 퍼지는 골목은 그 자체로 정겨운 풍경이 된다. 하루치 노동을 마친 후 마음껏 몸이 퍼지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퍼지다는 말은 공평한 마을을 그리게 하고, 모두가 편안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퍼짐의 정수는 숭늉이다. 냄비에다 쌀을 안치면 갓 지은 밥을 맛볼 수 있는데, 밥을 다 푼 다음에는 숭늉이 기다리고 있다.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이 따뜻한 물에 퍼져 몽글몽글하게 씹히는 건 참 기분 좋은 감촉이다. 냄비에 따라부은 물에도 구수한 밥맛이 베인다. 쌀부터 물까지 냄비 하나로 끈끈한 맛이 만들어진다. 이야기도 퍼진다. 할머니의 아랫목에서,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에서 이야기는 우러나온다. 저마다의 기억에서 출발해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며, 이야기는 사람 모양의 지도를 그린다. 세상에 혼자 태어나고 사라지는 이야기는 없다. 서사는 사람들 틈에서 생겨나고, 듣는 이를 상상하며 생기가 붙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추억이 된다. 여름밤 삼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잔뜩 긴장했던 시간, 무료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만화책을 나눠 보았던 기억은 세월이 지날수록 또렷해진다. 줄거리는 희미해져도 마음 졸이며 이야기에 빠졌던 즐거움은 고스란히 남는다. 이야기를 나누면 함께 하는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작은 토막일지라도 이야기를 공유하는 순간, 사람 사이는 가까워진다. 지하철에서 할머니들은 처음 보는 이에게도 쉽게 말을 건넨다. 시장에서 무얼 사가는지부터 요새 자주 가는 병원까지 할머니들의 호기심은 언제나 다채롭고, 어디서나 말동무를 만난다. 필연적으로 이야기는 공동체의 성격을 지닌다. 책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의 저자 김태훈은 '이야기의 범위와 공동체의 울타리는 거의 일치한다'고 정리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집단의 정서를 터득한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입장을 가지게 된다. 이 정의를 그대로 목격한 적이 있다. 지난봄 하동 터미널에서 화개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쌍계사가 목적지인 외국인부터 중간에 악양마을에서 내리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골로 가는 버스라서 그런지 기사 아저씨는 구수한 사투리를 뽐내며 승객들과 걸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버스 입구에는 할머니들의 무거운 짐을 받아서 좌석에 실어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하동 터미널에만 있는 독특한 직업 같았다. 도시의 문법으로 보자면 굳이 없어도 될 역할이지만, 노인 인구가 많은 시골에선 단골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돕는 귀한 존재였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졌다. 아주머니는 버스 중간쯤으로 와서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날씨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네요. 엊그제는 시내 어드메에서 불이 났는데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해요. 그 바람에 소방차들로 터미널 앞 삼거리가 꽉 막혀서 모두가 식겁하긴 했지만요. 장터 이불집에서는 혼사를 준비한다고 하네요, 늘 남의 이불을 해주다가 이번에는 둘째 아들 살림을 마련하게 됐으니 경사지요, 경사고 말고! 시끌벅적하던 버스 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지고, 승객들은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마을 소식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였다.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오고 떠나는 터미널에서 수많은 안부를 전해 듣고, 그것을 매일같이 전달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벌어지는 풍경에 사방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이야기의 둘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이야기는 이웃의 입으로 전해진다. 사람 사이를 잇고 그들의 생활과 함께 퍼져 나간다. 하동 사람들이 이웃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처럼 이야기는 고르게 번진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된다. 때때로 생활의 지혜가 되고, 그대로 고장의 정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야기의 방향을 하나로 길들여 왔다. 전두환 정권의 3S정책부터 국정원의 댓글 조작까지 그 역사는 너무나 길다. 수만 갈래의 물길을 막고 보를 쌓는 토건족의 방식처럼, 이야기도 가두고 통제해 하나의 이야기만 흐르게 했다. 그저 가두고 내려보내는 발화의 방식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지방분권이 정착되고, 경제의 속도가 사람에게 맞춰지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원도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시 재생 사업에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는 것까지 포괄하는 개념인데, 주로 미디어 산업에서 사용한다. 이야기로 얻고자 하는 수치화된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계산을 거쳐 배포 전략을 만들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스토리텔링을 호명하는 것은 다분히 경제적인 성과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도시 재생 사업에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은 대체로 지역의 전설이나 출세한 인물의 성장기를 가공해 일제히 보급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목표는 언제나 '지역 경제 활성화'로 귀결된다. 이 단계에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나 정서는 고려되지 않는다. 자본이 목적이 되면서 이야기는 도구가 되고, 주민들은 대상이 되고 만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폈다. 이야기 때문에 매일 몸살을 앓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공무원들은 감천문화마을을 '마추픽추'라 칭했다. 그저 풍경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맥락과 상관없는 고대 잉카문명을 부산으로 소환한 것이다. 마추픽추는 마을을 포장하고 관광객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에 성공해, 연간 200만 명의 어마어마한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허공에 뜬 이야기는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마추픽추 이야기는 전국 지자체의 주목을 받지만, 결코 주민들을 연결하고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다. 자본과 권력이 이야기를 이용할 때, 시민들은 예민한 더듬이로 이야기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재개발이 지역의 맥락을 거세한 채 가속화되는 것을 보고, 아파트 키드들은 SNS, 독립출판 등의 새로운 방법으로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또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며, 이야기의 목표는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힘을 기꺼이 공동의 이야기에 보태는 것은 시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키드의 동력은 SNS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중 SNS의 핵심 인터페이스인 타임라인에 있다. 그들은 타임라인을 통해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을 매 순간 목격하고, 이를 통해 세월의 마디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온 몸으로 기록의 가치를 체화하고, 현실을 기록하는 이야기의 주체가 되었다. 하동 버스 터미널의 안내자와 타임라인을 창조하는 아파트 키드는 각각 시골과 도시에서 마을을 지키는 이야기꾼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야기가 정겨운 안부였으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해야 할 자산이었다. 신화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의 현장에서 서사를 발견하는 시민들의 손에서 훌륭한 이야기는 태동할 수 있다. 우리의 바람은 탐욕의 속도가 아닌 사람의 속도로 모두의 이야기가 퍼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봄비처럼 통통한 호기심을 채워주고, 한여름의 세찬 빗줄기와 같이 마음을 씻어내는 존재다. 가을의 높은 하늘까지 힘차게 가닿을 수 있으며, 겨울에는 두 손을 데우는 온기처럼 스며든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는 숭늉처럼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뭉근한 맛과 닮았다. 뜨거운 냄비에서 탄생하는 끈끈한 맛은 오랫동안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이야기의 주인을 되찾고, 이야기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사계절을 풍요롭게 사는 인간처럼, 이야기가 우리 주위를 맴돌며 천천히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모두의 이야기가 둥글게 퍼지는 세상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