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나눔 선정도서]<빗물 아파트>(글 김연희, 그림 차영경, 반달)
나의 고향은 아파트이다. 현관 계단에서 걸음마 연습을 했고, 2년 동안 키우던 거북이가 죽었을 땐 경비 아저씨가 화단에 묻어주었다. 놀이터에서 모래로 케이크를 만들고 있으면, 어머니가 부엌 창문을 열고 "밥 먹어"라고 불렀다. 몇 시간을 놀아도 친구와 헤어지는 건 늘 아쉬웠기에, 하루는 친구 네에서 그 다음날은 우리 집에서 번갈아가며 저녁을 먹었다. 친구와 오랫동안 붙어 있는 것도 좋았지만, 그동안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반찬들을 맛볼 수 있어 매번 신나는 시간이었다. 초롱이네 엄마는 당근과 파를 다져 예쁘게 계란말이를 부쳐주었고, 서울에서 이사 온 재연이네는 신기하게 고추장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다. 재연이는 우리 엄마가 해주는 조개 미역국이 좋다고 했고, 나는 어디서든 뚝딱뚝딱 밥 한 공기를 비웠다. 우리는 매일 다른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친구와 나는 습관처럼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어둑한 계단 입구를 지날 땐, 동시에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인적이 드문 오솔길의 걸을 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서로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실랑이하다 학원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헤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내 친구들을 '305동 초롱이', '4층 재연이'라고 불렀고, 나는 엄마의 친구들을 '15층 이모', '311동 큰이모'라고 불렀다. 아파트 동과 호수로 별명을 붙였는데, 오래된 이름처럼 친근하고 자연스러웠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여러 삶이 둥지처럼 모여 있는 터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눈뜨고 잠들었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는다. 지금은 '캐슬'이나 '시티'와 같은 웅장한 이름으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나의 오래된 아파트는 어느 누구도 바라봐 주지 않는다. 벽에 금이 가도 철마다 단장하고 부지런히 돌봐줄 손길은 이제 없고, 재개발의 기회만 다들 기다리는 눈치다. 그림책 <빗물 아파트>는 낡은 엘레베이터가 고장 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15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된 사람들은 점차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5층에는 아기와 엄마가 살고 있고, 12층에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저마다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비가 그치고 고인 빗물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연히 맺게 된 사소한 관계는 생기를 만든다. 삭막한 도시 어딘가에서 고향의 향수를 찾고 있는 아파트 키드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런 분에게 추천해요. -도시 어딘가에서 고향의 향수를 찾는 아파트 키드 -기름종이로 펼쳐내는 새로운 기법의 그림책이 끌리는 사람 -책 한 권으로 미술관을 만나고 싶은 사람 #문학나눔 #책의입장 #붘어 #빗물아파트 #김연희 #아파트키드 #기름종이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