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이 빨라지자, 제일 먼저 시가 사라졌다

[문학나눔 선정도서]<파랑의 여행>시 정유경, 그림 최선영, 문학동네

by 희붐


시집을 놓은지 오래 되었다. 삶은 바쁘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메시지를 기다리며, 한가하게 책장이나 붙들고 있을 순 없었다. 마음의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자, 제일 먼저 시가 사라졌다. 퇴근길 버스 창문에 기대어 낱말을 모으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친구에게 시집을 선물하던 여유는 흩어졌다.

그러니깐 시는 시간을 타고 오는 거였다. 시인은 자벌레처럼 시계바늘 사이를 거닐다, 빈틈을 타고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이였다. 그걸 까마득히 잊고 바쁘게 사는 걸 훈장처럼 여겼으니, 시집을 드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행간이나 여백 따위는 시간을 마구 써버리는 사치이자, 쓸모를 도통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시집을 펴다니, 그것도 동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부담감이 엄습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숙제였다. 그러다 뒷표지의 한 문장을 읽고 마음이 내려 앉았다.

‘그날의 클로버는 저쪽 세상에서 살짝 흘린 초록의 단추 같은 것.’

베개 싸움, 술래, 눈사람, 비밀, 은하수 같은 낱말이 연달아 등장했다. 지금은 발음할 일이 없지만,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것들이 노랫말이 되어 차곡차곡 마음에 쌓였다. 시인의 시선은 대서양을 항해하는 선장의 망원경이 되었다, 어느 순간 마음의 온도를 가늠하는 눈금처럼 섬세해졌다.

이제서야 안다. 시를 읽을 때 특별한 마음가짐 같은 건 없었다. 어쩌다 책장을 펼치고, 그 안에서 멈칫 멈춰서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파랑의 여행>으로 오래 전에 흘린 단추를 하나 주운 듯하다. 잃어버렸던 사실조차 까마득해진 ’그것’이 반짝하고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분에게 추천해요.
-시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졌던 분
-오래 전 잃어버린 마음의 단추를 줍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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