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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witter Aug 17. 2023

작가요...? 저는 그런 거창한 사람이 아닌데요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단순한 재미였다. 글... 이라기보다는 불쏘시개에 가까운 데이터쪼가리여서 망정이었지, 종이에 썼다면 흑연과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수백 수천번해도 모자랄 안타까운 내용들이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풋내 나는 사랑이야기라던가,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 수준에 맞는 귀여운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누구보다 진지했던 고민들, 혹은 상상이 가득한 모험의 세계를 그리는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을 써나가곤 했다. 글을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고,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서로 칭찬하기 급급하면서 또 서로 재밌다고 깔깔 거리며 써내려 갔던 소설은 단 한번도 완결을 내본적이 없다.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춘기 시절의 아이가 그렇지!

 그래도 얻은 것은 많았다. 미술이 하고 싶다며 칭얼대던 아이는 알바비를 벌어서라도 입시학원을 다녔음에도 그 흔한 수상경험 한번 없이 미대를 입학하였지만, 나름 글쓰기로는 상도 많이 받아보았다. 무슨 문학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일단은 예술쟁이잖아?` 라는 마음으로 감성 한 스푼 가득 담은 글들을 SNS상에 열심히 올려대며 글을 써내려 갔다. 나름의 소잿거리가 되기는 하였는지 곧잘 재밌다는 듯이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힘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취미는 취미일 뿐, 이내 군대며 뭐며 이리저리 휘둘리다보니 어느새 글은 커녕 그림도 그리지 않는 메말라버린 내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이제 예술과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으나...




 "글 다시 안써?"


 잊을만 하면, 쿡쿡. 잊을만 하면, 쿡쿡. 자꾸 글을 다시 쓸 생각이 없냐며 찔러댄다. 그렇게 10년을 꾸준히 찔러 댄다. 친구인지 웬수인지. 가뜩이나 힘든 일도 많았어서 잡생각도 많아졌는데 자꾸 찔러대던 친구녀석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그냥 내가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인지 어딘가.. 노션같은 개인 공간에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거창한 일을 적을것은 아니고, 그저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혼자서 쓰는 것 보다는 이전처럼 많은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고 싶었다.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 개인 블로그 등은 이제 멀리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웬걸 `브런치` 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작가... 신청을 해야한다고? 저는 그런 거창한 사림아 아닌데요...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것...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훌어 보았다.


1. 자신에 대한 소개가 필요했다.

    - 출간 경험도 없고, 특정한 전문성이 있다고 하기에도 나는 애매하다. 미대를 나와서 프로그래밍이라니! 전문성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건지... 독자들을 위한 좋은 글....? 나는... 그저 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2. 활동 계획이 필요했다.   

    - 오, 여행도 계획없이 즉석으로 떠나는 나에게 계획이란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어릴 때 처럼 쓰고 싶은 글을 아무렇게나 써버리는게 아니라 조금은 생각이란걸 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3. 준비된 글이 필요했다.

    - 난 준비된 글이 없었다. 보고서 말고는 최근에 글이라고는, 학생들을 독려하는 문구나, 롤링페이퍼, 작별 편지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이건 공개 할 수 없었다. 그것 외에는 최근 겪은 일들에 대한 일기가 전부였다. 이런 일상적인 일기로 괜찮은걸까?


4. 타 SNS에서의 활동 내역이 있으면 좋다고 한다.

    - 나는... 현재 강의를 하고 있고, 내 개인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SNS를 사내 정책으로 금지당했었다. 모두 비공개 계정으로 활동해야 했기에 아무런 SNS도 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정리해보자면, `너 브런치에서 글 쓸 준비가 단 하나도 안되있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 나 그럼 여기서 글 쓸 수 있게 되면 그래도 어느정도는 인정 받을 수 있는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전 해보지도 않던 계획이란 것을 세워보았다.



1.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까?

    - 일기를 쓸 것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에 조금 더 정리를 한, 그런 이야기들을. 내 생각을 남들과 공유하고,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글들. 그러면서 내 마음을 정리 할 수 있는 수필과도 같은 낙서들을 쓰고 싶었다.


2.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소개 하는게 좋을까?

    - 이건 거짓없이 적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취미로 글과 그림을 즐겼고 그 만큼 자주 글을 써봤으니 어느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그리고 전문성은 없지만, 특색은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전공한,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는, 그러면서 글을 쓰는 강사. 캬... 좋은 소잿거리가 아닌가? 라고 자화자찬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작성하였다.


3. 준비된 글은 어떻게 할까?

    - 이건, 오히려 앞선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나를 소개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던 것보다 도리어 쉽게 진행되었다. 작가 선정이 되기 위해서 별도의 글을 써야 할까? 그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것이 아니라, 작가로 선정되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나는 글이란 것을 배워 본적도 없는데 작가가 되기 위한 글이라니, 난 그런 것은 할 줄 모른다.

  차라리 자기 소개에 적었듯, 계획에 적었듯,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내가 쓰고 싶었던 시, 수필, 에세이를 종류별로 쓰고 싶은대로 적었다.


4. SNS...는 깔끔하게 포기

    - 이제와서 부랴부랴 준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대 여섯개 정도의 글을 작성하고 나서, 스리슬쩍 작가 신청하기를 눌러보았다. 그런데 아차차...

작가의 서랍에서 선택 해 신청할 수 있는 글은 3개 까지다.


 울며겨자먹기로, 나름 그래도 나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앞서 작성한 계획과 소개에 맞는 글들을 선정해서 신청하기 버튼을 눌렀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반쯤은 안될거야... 다음에 다시 신청하자... 라는 마음으로 누르고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 라는 말은 거짓말 매일 같이 메일함을 들락거렸다. - 아무튼, 브런치 작가 신청을 눌러뒀다는 얘기를 10년동안 꾸준히도 글 써달라고 징징거리던 친구녀석에게 알리고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과는 놀랍게도 작가 선정이 되었다. 저는... 정말 그런 거창한 사람이 아닌데요... 그래도 덕분에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얻게 되었고, 또 훌륭한 작가님들의 많은 글들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 글은 작가가 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

 뭐... 오랜만에 재밌는 취미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친구에게는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근데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게 전부 친구녀석이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 포석이었다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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