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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witter Aug 19. 2023

폐차하고 오는 길

떠나보낸 많은 것들

첫 차?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을 함께한 나름의 첫 차를 폐차 수속을 밟고 돌아왔다. 오래된 중고차를 거의 공짜로 얻어서 타고 다녔는데, 잘만 나가던 차가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뒷바퀴 축이 마모돼서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이제 막 출발하려던 차에 일이 생겨서 망정이지, 한참 다니던 중에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지 아찔하기만 하다. 아직은 초보운전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큰 일이었다.


 폐차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필요했다. 차량 가액이 얼마인지 알아봐야 했고, 그 금액만큼은 폐차장에서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폐차장 수속도 아무 데나 맡기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폐차 협회? 같은 곳을 알아보고 그곳에 등록된 곳에만 연락하는 게 좋다고 하였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필요했는데 알아보니, 차량 말소나 정비소에서 폐차장까지의 견인이니 등등은, 폐차장에서 모두 알아서 해결해 준다고 한다. 하물며, 네비나 블랙박스 같은 소모품들마저도 폐차장에서 모두 수거하여 돌려준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전화로 요청만 보내면 그만인 일이었다. 문서도 팩스로 보내주면 된다나. 차량 보험비는 보험사에 전화하면 다 처리해 준다고 한다. 세상이 참 편해졌다. 처음에는 꽤나 큰일이 되겠구나 하였는데 내가 하는 것은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조금 찾아보고 전화 몇 통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끝날 일이었다.


 블랙박스도, 내비게이션도, 차량 내부에 챙겨놨던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다 낡아 빠진 우산도, 그냥 폐차장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겠거니 하고 넘기려고 하였으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아냐, 블박이랑, 네비는 뜯어 달라고 할게. 그거 챙겨 올게." 라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폐차장을 찾아갔다. 일이 쌓여있었으나, 일보다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폐차시키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한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난 지금 이 길을 왜 가고 있는 걸까? 굳이 수속도 다 끝낸 마당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차 안에 남아 있는 잡다한 물건들 밖에 없을 텐데 주말에 시간을 내가면서 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러다 문득, 아주 옛날 생각이 났다.




 10년도 더 옛날,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얻은 자취방 사진은 아직도 내 핸드폰 앨범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 후로 몇 번씩이나 핸드폰을 바꿔왔지만, 이 사진만큼은 몇 번이고 동기화되어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전송되어 오더니 아직도 남아있다.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지냈었는데 오늘 문득 떠올라 찾아보니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참, 웃긴 이야기다. 1년 계약으로 매년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이 사진만큼은 지우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평소에 찾아보는 것도 아니다. 앨범을 뒤지고 뒤지다 보니 있었다. 

 더 웃긴 건 그 수십 번의 스크롤과 수개의 앨범들을 다 뒤지면서 '있을 건데... 있을 건데... 지우지 않았을 건데...' 라며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엔 한 번도 꺼내보지도 않았으면서...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집이라서 주머니에 못 챙겨 다닌 거지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면 아마 아직도 이삿짐에 챙기고 다녔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는 것으로 내 잡동사니가 모여있는 한 구석에는 아직도 저 당시 쓰던 첫 스마트폰과 지갑이 들어있다. 이제는 켜지지도 않는 스마트폰과 다 낡아 해져서 들고 다닐 수도 없는 지갑인데도 말이다.

 버리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었고, 나도 버려야지... 하면서도 어째선지 아직도 버리질 못한다. 그래도 나름 정리한다고 해서 이제는 쇼핑백 하나 정도에 들어갈 정도로 다 정리하고 남은 건 몇 개 없지만 그렇다.




 최근 새 물건으로 바꾼 것들이 꽤나 많다. 오랫동안 써오던 물건들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7년을 써왔던 키보드가 말썽이라 새 걸로 바꿨다. 바꿨다고 해도, 동일한 제품으로 구매하긴 했지만, 어쨌든.


 6년을 써온 액정 타블렛이 망가졌다. 이건 아직 바꾸지는 못했다. 쓰는데 불편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전원도 켜지 않은 채 책상 한편을 자리하고 있다. 


 5년을 넘게 쓴 핸드폰을 바꿨다. 액정이 박살이나 터치가 잘 되지도 않던 폰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도저히 바꿀 수 없어 액정을 고쳐서라도 쓸 것 같아 바꿨다. 그렇다고 버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책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충전만 하면 언제든 지 켜 볼 수 있지만 켜서 보지는 않는다.


 4년가량 쓴 부모님네 세탁기를 새 걸로 바꿨다. - 이건 솔직히 라임 맞추려고 억지로 끼워 넣어본다. -


 3년 넘게 써온 가방을 바꿨다. 잘 들고 다니지도 않던 크로스 백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버리지 않고 옷장에 박아두었던 녀석 대신 간단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에코백을 하나 구입하였다. 이건, 꽤나 잘 가지고 다닌다.


 만든 지 2년 정도 된 수제 카드 지갑을 새 걸로 바꿨다. 마찬가지로 삼성페이로 모든 걸 처리하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리고 오늘,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내 첫차였던 차량을 폐차장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다. 별생각 없을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르게 폐차장에서 짐을 챙긴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비가 올 것처럼 하더니 결국 쏟아지려는 기색이 보여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폐차장에서 멀어질수록 비가 더 거세게 쏟아진다. 가지 말라는 듯이 비가 오는 것인지, 기분이 울적해져 노랫소리를 더욱 키웠다. 빗소리가 가려지도록. 그렇게 창원에서 진해로 넘어오는 터널을 지나오자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쳤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조금 더 울적해졌다. 


 서른이 넘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은 정든 것을 떠나보내는 것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직업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매 번 정든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 일은 나랑 안 맞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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