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생각 기술 #1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만은 되고 싶지 않았다]
토목공학과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토목공학과는 사회기반시설(도로, 교량, 댐, 지반, 공항, 항만 등)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을 배우는 건설산업에 대해 연구하는 학과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토목이라고 해서 흙 토(土), 나무 목(木)을 생각해서 각목 자르고 흙으로 빚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으로 착가 하곤 한다. 전혀 다른 분야라는 것... 분명히 하고 싶다...
필자는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당연스레 학과 선후배, 동기들이 그랬듯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만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자,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당연히 1군 건설사 입사가 목표였다. 그 시절, 패배자와 승리자는 1군 건설사를 입사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어떤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엔지니어만큼 좋은 직업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미 결정된 진로였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결과는... 퇴사했다. 그리고 전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결국 월급쟁이였다]
직업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자아실현? 호구지책?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단연 '돈 벌기 위해'라는 단어로 해석하고 싶다. 단순히 밥벌이 만을 위해 내 시간과 비용을 어느 한 분야에 투자해서 직업을 갖지는 않는다. 누구나 대박이란 단어를 꿈꾸고, 조기 은퇴라는 말을 꿈꾼다. 근데,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든, 의사든 젊은 나이에 은퇴하지는 않는다. 고액 연봉의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멀리 시선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부장님의 삶이 내 20년 뒤에 삶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액 연봉 엔지니어는 맞았지만, 항상 허덕였다. 카드 명세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고, 아이들 키우는데 버거워했다.
필자에게는 그래서 전직이 돌파구가 됐다. 전직은 이직에서 더 나아가, 다루는 분야 자체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토목공학과를 졸업해 건설회사에 입사했으나, 그만두고 내 사업 아이템을 갖길 원했다. 그래서 영업을 결심했고, 기계분야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해외영업 직무로 기술영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초봉은 비슷했지만, 갈수록 격차는 벌어졌다. 전 직장이 많이 주긴 했더라.
[당장의 월급보다는 아이템]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일하면서 오가는 금액이 내 월급보다 적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때마다 자괴감이 찾아왔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큰 액수의 금액을 매일 같이 결재 올리고, 입금 확인하고, 송금해주고... 필자는 너무나 충격이었다. 필자가 만든 견적서에서 네고(nego)해주는 금액이 내 월급의 몇 배는 됐다. 그것도 매번...
그때 필자는 생각했다.
그럼 내가 저런 시스템을 내 거로 만들면, 부자 될 수 있겠는데?
그때부터 월급 200만 원의 삶을 어떻게 하면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승진해도 돈을 더 벌 수 있고, 부업을 해도 더 벌 수 있고, 주식투자를 해도 더 벌 수 있지만, 학창 시절 공부하듯 세상에 존재하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었다.
로버트 기요사키, 롭 무어, 도널드 트럼프, 워런 버핏, 록펠러, 스티븐 잡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부호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했나에 대해 지난가는 이야기로 접해본 적은 있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어땠고, 그들의 주관은 어떻고, 자서전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들의 관련 서적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결국, 어렴풋이 추측했던 생각이 확실히 필자의 삶의 방향으로 정해졌다. 이제 목표는 이직이 아니라, 승진이 아니라, 사업이다.
[사업, 거창하지도 않지만 유치해서도 안 되는]
부라이 언! 사업 별거 아니더라고,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하는 사람들은 엄청 쉽게 해. 너무 재니까 어려운 거야.
- 스포츠 관련 사업 유 대표 -
필자가 좋아하는 동기이자, 유능한 사업가인 유 대표가 한 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면서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렇게 조언을 했다. 까칠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 강한 필자가 필요 이상으로 신중해질 때면, 유 대표는 한번씩 쿨해지라고 조언한다.
매번 배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하다. 그리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는 부분을 간접경험이라도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작은 것부터 경험해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스포츠 용품들을 싼값에 수입해, 온라인으로 판매하기도 해 봤고,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강사생활과 교재 출판도 해봤다. 물론, 흥행하지는 못했다. 원금회복 정도 수준이었지만, 배우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들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누구의 손을 탔는지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월급쟁이로 자산증식은 이렇게 했다]
내가 먹은 김밥을 한 줄로 늘어 세우면 to the moon
필자는 월급쟁이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나름 작은 사업도 한다.
월급 200만 원으로 시작했다. 귀농했던 부모님 집에 얹혀살기엔 너무 멀어서, 봉천동 2평 남짓한 원룸에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2만 원, 월 관리비 6만 원짜리 집에 세 들어 살았다. BMW(Bus, Metro, Walking)로 생활했다. 혼자 살았지만,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셔츠는 필자가 직접 세탁기로 빨았다.
그렇게 1년 딱 살고, 결혼했다. 소박하게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서울에 아파트 한 채씩 갖고 시작한다지만, 필자는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진짜 실력은 내 힘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다.
신혼생활은 봉천동 9평짜리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40만 원, 관리비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원룸에 비하면 매우 훌륭했다. 그렇게 와이프와 열심히 자산을 증식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아들이 태어났다. 전세보증금 2억 5천만 원의 방 3칸짜리 빌라로 이사했다. 아들이 태어났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명분이 너무나도 강해졌다. 열심히 자산을 불렸다. 부동산 경매, 주식투자, 수학 과외, 스포츠용품 판매 등. 최근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자산을 불렸다.
아들이 태어나고 2년 뒤, 경기도에 한 아파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아파트를 또 구매했다. 건물주가 됐다.
매우 아끼며 살았다. 혼자 살면서, 또 가족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끼니를 때울 때는 아껴서 자산증식에 필요한 자본금을 만들고 싶었다. 가난한 어학연수생 시절에는 플레인 샌드위치(당시에는 가장 싼 먹거리)에 음료수 없이 거리에 앉아 틈틈이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을 버티면서, 내가 그토록 원했던 어학연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일단은 아껴서, 내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은 단순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많이 벌고, 적게 쓰고, 아끼고.
그리고 오늘도 가족들에게 따뜻한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개개인마다 속도가 있다. 그리고 그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느리더라도 자책할 필요 없다. 과속이 위험한 것이지,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엔 찬사를 보낸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거나, 고민을 해야 할 사람들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는 아직 누군가에게 이런 이력을 드러내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발전하고 싶다. 필자의 생각을 여실히 모두 집필했다.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크몽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 중이기도 하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같이 가야 한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