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한 달간 파리 어학연수에서 알게 된 누나 둘과 스위스 제네바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우리 셋은 오리발 보트가 아닌 직접 노를 저으며 드넓은 레만 호수 위를 떠다녔다. 그때 노를 젓지 않던 E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까딱하면 우리 모두 호수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며 '입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당장이라도 입방정을 멈추라며 호통치듯 외쳤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세상에 태어나 5년 하고도 13일밖에 살지 못한 여동생이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 병을 발견하고 얼마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급성'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오랜 시간 투병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그때 살던 아파트 단지에 있었던 사회체육센터에서 어린이 영어회화 교실의 마지막 날이었다. 수료증인지 성적표인지를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날 수업을 들으며 집을 나설 때 동생이 위독한 상태였는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일단 수업을 가라며 등 떠밀리듯 나갔던 참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이 열려 있고, 현관은 수십 켤레의 신발로 가득 차 있었다. 집에 들어가도 되는 건지 망설이고 있던 그때, 외할머니가 현관문 밖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미리 챙겨두셨던 간단한 짐가방을 들고 나오셨다. 그날 동생은 5년 여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고,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방학이 끝날 때까지 지내야만 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도 차마 묻지 못한 채 어린이 영어교실에서 받은 수료증인지 성적표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잊은 터였다. 그러다 버스정류장 가판대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 개그맨이었던 심형래가 빨간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표지에 등장한 연예 주간지《TV가이드》가 눈에 띄었고, 외할머니는 심형래를 유심히 바라보던 내게 한 권을 사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죽음에 대한 기억에는 빨간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심형래가 늘 함께 있다.
30여 년 전, 동생이 세상을 떠난 날 내 손을 잡고 당신 집으로 데려가주셨던 외할머니께서 97세를 일기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때에 태어나셔서, 광복과 한국 전쟁을 비롯해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등 한국 근대사의 주요 이벤트를 모두 겪으신 셈이다.
90대에 접어드셨을 때에도 기력이 충천하셨기에, '백세시대' 노래를 부르는 요즘 같은 때에 어쩌면 나의 할머니도 100세를 맞이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90대 중반을 넘어서며 일 년에 몇 번 뵐 때마다 기력이 쇠하시는 것이 눈으로 보였고, 인간이 나이를 먹고 신체가 노쇄하게 되는 모습을 실제 지켜보는 일은 '백세시대' 타령과 함께 겹쳐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났던 1984년에는 화장(火葬)이 일반적이지 않아, 동생은 어느 공원묘지에 묻혀 있지만, 몇 달 전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는 화장을 거쳐 어느 수목원에 모셔졌다.
채 6년도 살지 못했던 어린이의 죽음이나 100년 가까이 인생을 산 노인의 죽음, 인간이 태어나 생명을 다하게 되는 자연의 섭리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어느 죽음이나 슬프다. 그렇다고 자나 깨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다가는 우울감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니, 하루하루 맞이하는 인생의 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죽음에 관한 영화가 한두 편은 아니지만, 사신(死神)이 등장하는 <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1997)>이나 우리나라 전통 장례절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축제(祝祭) Festival(1996)>를 다시 보며 내가 기억하는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