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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Sep 11. 2024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 vs 나보다 나이 많은 후배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조직 사회 안에서 어떤 기준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나뉘는 것을 감지하는 최초의 순간은 언제일까?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인생이 확 바뀔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대학 신입생 때 각자의 사정으로 재수 혹은 삼수를 거쳐 같은 학번이 된 동기에게 형, 누나, 언니, 오빠 등의 호칭을 붙여야만 자연스러운 것은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형, 누나, 언니, 오빠 등의 호칭을 듣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나이이지만 학번이 높은 선배를 대할 때 어땠을지는 궁금했다.


어쨌든 같은 학번이지만, 나이가 한두서너 살 많은 동기에게는 정겨운 호칭을 동반해, 나이에 따른 서열이 자연스럽고 훈훈하게 정리되었다.



조대리가 카투사로 복무했던 평택 캠프 험프리스, 그중에서도 카투사가 약 50명에 달하는 본부중대에는 당연히 군대 내 계급에 따른 서열이 강력하게 적용되는 집단이었다. 조대리는 여차저차한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했기 때문에, 이미 논산훈련소에서부터 자신보다 한두서너 살 어리다고 알게 된 교관들의 명령에 따라야 했고, 자대 배치를 받은 이후에도 자신보다 한두 살 어린 상사들에게 경례를 하고 '다나까' 말투를 써야 했다. 그건 싫다고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니, 한두 살 어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자대 배치 후 두 달쯤 지났을까. 한 달 남짓으로 나뉘는 기수로 따지면 두세 기수 뒤의 신병들이 들어왔는데, 조대리보다 세 살이 많은 신병이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기소개 때 듣자 하니, 그는 조대리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에다 무려 3년이나 선배였던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다닌 기간이 겹치지도 않은 까마득한 대선배격이었으니, 조대리의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함께 지낼 2년 동안 시치미를 뚝 뗄 수만은 없었다.


결국 단둘이 있던 어느 순간, 조대리는 그 사실을 밝혔고, 남은 2년 동안 둘만 있을 때엔 호칭이 형이 됐든 선배님이 됐든 그렇게 막역하게 지냈으니,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그걸 밝히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조대리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후배이거나 부사수이면 편하고, 자신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선배이거나 사수라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순서대로, 모든 조직의 서열이 정해진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조대리가 이후 겪은 조직에서는 그 순서가 뒤죽박죽 들쭉날쭉이었다.


영화사가 아닌, 조대리 생애 첫 직장에서 조대리의 사수는 조대리보다 서너 살 많았으나, 조대리가 입사했을 때 이미 그 사수는 퇴사를 했던가, 퇴사를 앞두고 있던가 했다. 태어나 처음 회사원이 된 조대리가 자신보다 서너 살부터 네댓 살, 열 살 많은 '선배'들 가운데 '막내' 노릇에 익숙해져 갈 무렵, 그래봐야 입사 후 두서너 달 때쯤 지났을 때,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조대리보다 서너 살 많은 이였다.


조대리가 사회 경험이 좀 더 풍부했거나, 아니면 성격이라도 유들유들했다면 모를까, 당시 조대리에게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신입 사원의 입사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조대리 자신도 그 일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서툰 점이 많은데, 자신의 직속 후배가 적어도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막연하게 기대했던 터였다. 


물론, 영화사로 이직의 기회가 생겨 입사 7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된 조대리가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은 길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그에게나 조대리에게나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요즘 뉴스에서 시끌시끌한 경기도 모처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테마파크를 위한 신사업팀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조대리보다 서너 살 어린 상사를 둘이나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대리 자신보다 주변에서 걱정이 일었다.


조대리가 10여 년을 넘게 근무한 영화사업부에서는 일부 특출 난 인력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나이와 직급이 정비례했으나, 신사업팀은 상황이 달랐다. 하지만 어느덧 연차가 10여 년 이상 쌓이기는 했으나,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실무의 맨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온 조대리는 직급도 느릿느릿 완행 에스컬레이터를 탄 양 쉬엄쉬엄 짚어가고 있었으니, 경력의 시작점이 달랐을, 그래서 조대리보다 나이는 적지만 직급이 높은 상사를 거부할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조대리가 이병이었을 때, 알고 보니 조대리와 동갑이지만 말년 병장이던 이를 봤을 때,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병장이었을 것만 같은 포스를 감지했듯이, 과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나 보다. 결정권자는 결정권자의 권한을 갖고, 일개미는 부지런히 일만 해야 하고, 직급의 퀀텀 점프란 요원하다는 숙명을 쉽사리 벗어젖힐 수 없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패기 넘치는 30대 CEO 앤 해서웨이가 시니어 인턴 로버트 드 니로를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인턴 The Intern(2015)>을 다시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9년 전에는 30대 CEO 쪽에 이입했던 조대리의 감정이, 9년이 지나 다시 보면서 시니어 인턴 로버트 드 니로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인생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젊지만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젊은 CEO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시니어 인턴의 혜안이라니, 과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일까? 조대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 어딘가에서는 실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결국 현실과 정반대인 판타지라는 시니컬한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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