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가 카투사로 복무했던 2년 동안,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이 꽤 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더니, 한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담겨있는데, 그중에는 조대리보다 세 살 어리지만, 뭐가 바빴는지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의 20대 시절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제대한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말년 병장 조대리의 사진을 보던 친구 A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진 속에 담긴 네 눈빛이 뭔가 세상을 다 거머쥔 것 같아 보여
(사실 재수 없어 보여)
재수 없어 보인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사진을 다시 본 조대리는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아닌 게 아니라, 사진 속 말년 병장 조대리의 눈빛은 굉장히 자신만만하면서도 상당히 거만해 보였다.
훈련소 6주와 카투사 아카데미 3주를 보내면, 자대에 배치되면서 이등병이 되고, 이등병 6개월이 지나면 일등병이 되고, 또 얼마가 지나면 상병, 그리고 병장, 그렇게 기간을 다 채우고 나면 제대하게 되는, 거의 자동적으로 진급하는 시스템 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진급이 누락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고, 그건 조대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별일 없으면 자동적으로 진급하는 시스템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군대 밖 '사회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제대가 코앞에 다가온 말년 병장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기분이었겠지.
영화 <관상(2013)>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과 대사가 있다.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수양대군의 첫 등장 장면과 수양대군이 김내경(송강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조대리가 회사 생활을 통해 만난 대표는 대략 10여 명 정도이다.
자수성가였든 집안 자산이었든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대표인 경우도 있었고, 이른바 재벌기업에 고용된 대표도 있었다. 스스로가 세운 회사의 대표인 경우를 제외하고, 피고용인으로서의 대표 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던 분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해마다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들 가운데, n 년이 지난 후 대표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사람은 그중에 몇이나 될까? 100명 중 1명? 1,000명 중 1명?
대기업의 경우, 그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가운데, 승진에 승진을 거쳐 훗날 대표이사까지 되는 사람은 몇 명일까? 반대로, 조대리가 만났던 대표 이사 가운데, 그 회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0명이었다.
마치 훈련병 시절에 바라보던 교관, 이등병 시절에 만난 병장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교관이었고 병장이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평사원으로 첫 대면한 상대의 직함이 대표 이사라면, 그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대표님'이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또한 반대로 생각해 보면, 평사원 출신으로 대표 이사까지 올라간 경우를 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는 또한 평사원 일개미로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해서 무슨 희망이 있는 걸까 회의가 든다는 말이다.
똑 떨어지는 정답이 있지는 않지만, 한 회사에서 묵묵히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고 꾸준히 근무하는 일개미가 임원으로 승진하는 일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연봉과 직급을 상승시키며 이직을 이어가는 경우 중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더 높은 곳에 올라갈 확률이 큰지 어렴풋이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물론, 둘 중 어느 쪽도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마치 사람마다 관상이 다르듯, 한 회사의 대표가 될 관상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