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대리 Sep 25. 2024

친구는 회사 밖에서 찾자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났다 또 헤어지고

영화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영화가 아닌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의 첫 반응은 이랬다.


이야,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일하니까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도 하고 재미있겠다야!

이 말은 절반은 맞기도 하고, 또 절반은 틀렸다.



조직의 쓴맛을 혀끝으로 살짝 봤을 법했던 초년생 시절, 양각으로 새겨진 영화사 로고에 내리 꽂힌 핀 조명에 현혹되었던 조대리의 첫 번째 영화사에서 만났던 위아래로 두서 네댓 살 차이 나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여남은 명은 한동안 '진짜 진심으로' 친하게 지냈다.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가슴팍에 꽂히겠지만, 첫 영화사로 이직하기 전 회사 경험이 고작 7개월이었던 조대리에게 비슷한 연배의,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근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오죽하면 한동안은 일요일 저녁만 되어도 출근하고 싶어 몸이 들썩거리기까지 했으려나. 단톡방이란 게 없던 시절이니 망정이니, 만약 단톡방이 있었다면 아마 일주일 내내 온갖 수다가 오가며 난리법석이었을 게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는 없다. 특히 회사에서 만난 사이라면.


서 네댓 달 때쯤 불타오른 뜨거운 회사 내 친목 관계는 어느 순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고, 또 얼마 후 다른 누군가가 또 떠나고, 그러다 조대리가 떠나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왜 아니었겠는가.



조대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몇 년인지 세는 게 고단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몇 년 전, 고 3 때 7반이었던 조대리의 옆반인 6반이었고, 그전에 같은 반도 여러 번이었던 동창 K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졸업 후 1n 년 만에 마주쳤다. K는 영화전문지를 발간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조대리는 C사에 근무할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K가 반갑기도 했지만, 조대리가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고 3 때 6반이었던 친구들은 졸업 후에도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모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조대리가 속했던 7반은 조대리만 빼고 만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조대리는 7반 친구들 대부분을 졸업 후에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연락을 한 적도,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


K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비단 고 3 시절뿐만이 아니라, 조대리가 속한 그룹은 어딘가 '콩가루'의 기운이 서려있나 보다. 그 원인이 조대리 자신에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외부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명쾌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조대리가 속한 그룹은 마치 조대리 자신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한순간 뜨겁게 불타올랐다가 사르르 식어버리는 일이 잦달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현상이니, 어느 누구 개인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깊게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생각해 볼 문제이기는 하다.



인간은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 행동은 다르게 하는 경우가 잦다.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그 실수가 실수인 것을 알면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조대리의 첫 영화사에서 뜨겁게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들었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이리저리 치이더니, 인원 수가 10배 이상 더 많은 큰 조직인 C사에 입사하면서 조대리가 다짐 또 다짐했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그 굳은 다짐은 또 반복됐다.


한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은 이른바 '월주회'라 불렀던 술자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월주회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그 주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싶어서였는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였는지, 그 둘 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월요일 출근하자마자부터 일단 업무 시작은 그날의 월주회 멤버를 적어도 둘 이상은 섭외해 놔야 마음이 놓였다.


두 명 이상을 섭외하면, 그날 월주회는 예닐곱 명 이상이 금세 조직되어 흥겨운 술자리가 보장되고,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중에도 월주회 멤버들의 손놀림은 바빴다. 혹시 주변에 누가 또 있는지, 누군가가 즉석에서 합류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1차를 마치고 2차는 어디로 갈지, 2차 이후 노래방을 갈지 3차를 갈지 등등 의견이 분분할 때마다, 누구든 즐겁지 않은 사람은 낄 필요가 없었기에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인간에게 실수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게 월주회가 한 주의 시작을 알리고, 화요일은 해장술을 마시고,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이라 지루하니 마시고, 목요일은 주말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마시고, 금요일은 다음날 쉬니까 마시는 등, 일주일에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시고 또 마셔대며 젊음을 탕진한다.


돌이켜보면, 술자리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기는 했나 싶다. 대부분은 회사에서 꼴배기 싫은 상사나 동료에 대한 험담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역시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누군가가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타 계열



조대리가 그리고 이번 글과 함께 업로드한 일러스트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워킹걸 Working Girl(1988)>의 한 장면이다.


운동화를 신고 유람선에 올라 타 스탠 아일랜드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흙수저 테스(멜라니 그리피스)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신시아(조언 쿠삭)는 영화 속 주요 갈등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한결같이 테스를 응원하고 테스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신시아와 같은 친구를 회사에서 만날 수 있다. 회사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해서 '영원한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회사에서 만나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순수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지는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누군가 공통으로 거슬려하는 존재에 대한 험담으로 급격하게 친밀해진 경우를 생각해 보자.


A와 B는 C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눈만 마주치면 C에 대한 불평과 불만, 험담을 늘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여기서 A, B, C 모두 피고용인, 즉 뼈 빠지게 일해봐야 올라갈 자리가 빤한 똑같은 마름이라는 핀잔은 잠시 접어두자). 그렇게 C는 A와 B가 회사에서 만난 가장 절친한 동료가 되도록 다리를 놓아준 고마운 존재가 된다.


그러다 C가 어떤 이유에서건 A와 B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그 이후 A와 B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헛말이 아니듯, A와 B는 C를 소재로 한 험담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혹여라도 C가 다른 회사로 옮긴 후 승승장구를 하든, 다른 회사에서는 본색이 금세 드러나 애를 먹고 있든 간에, C의 근황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대화 소재로서의 역할도 점점 옅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C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둘 사이에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A와 B는 말을 섞는 횟수가 줄어들고, 조금씩 점점 멀어져 간다.



회사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없듯이, 회사 사람 모두를 적으로 돌릴 이유도 없다. 다만, 회사에서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순수한 관계를 형성하기는 일은 쉽지 않기에, 너무 쉽게 마음을 여는 일도, 마음을 주는 일도, 마음을 닫아버리는 일도 모두 신중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이전 11화 의전(儀典)이나 프로토콜이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