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거진의 정체는

by 브라이스와 줄리

회사를 관둔 후 일기를 써보겠단 생각으로 매거진을 개설했다.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 그냥 '이직일기'라고 붙였다. 근데 지금까지 쓴 일기들을 보면 이직에 대한 얘긴 하나도 없다. 사실 매거진 이름을 바꾸고 싶은데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난 기사를 쓸 때도 그랬지만 제목 짓기가 참 어렵더라. 식상하고 뻔한 것만 떠오른다.


어쨌든 회사를 관둔지 석달이 지났다. 석달 안에 재취업을 하리라 다짐했지만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걸 준비해도 그냥 하는둥 마는둥, 의욕이 생기는둥 마는둥. 그래도 초반엔 이전 회사에서의 좋지 않았던 기억들로부터 헤어나오겠다는 마음으로 열심을 냈고, 8월쯤 나름의 성과를 보기도 했다. 두 곳의 공기업에서 최종면접을 본 것이다. 하지만 한 곳은 '나이 많은 여자 신입사원'으로서의 각오와 '결혼'에 대한 계획을 직설적으로 물어보더니 결 불합격을 통보했고, 다른 한 곳은 채용이 진행 중인 걸 까먹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주째 감감 무소식인 상태다.


솔직히 직장생활을 다시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대기업, 외국계기업, 언론사를 거치며 모두 다 애매하게 맛 본 탓에 어떤 회사를 가도 다 뻔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도 막상 들어가면 또 부지런히 적응해가며 잘 하려고 하겠지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난 여름 동안 여행도 다녀오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숙면도 취하면서 날로 건강해지고 있다.(매거진 초반에 썼던 새벽 5시50분 기상은 아주 머-언 과거 얘기가 되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식욕이 떨어져 본적이 없는 나는 여전히 그릇을 파먹을 기세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있고, 일주일에 3번 요가도 다니면서 웰빙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있다.


이따금씩 대낮에 공원 벤치에 앉아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거나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면 한없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또 언제 이렇게 넋놓고 있어보겠나 싶기도 하고. 그냥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근데 뭐... 설마 평생 백수로 살기야 하겠어? 맨날 이런 마음으로 빈둥빈둥 놀고 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어느덧 졸업한지 햇수로 6년째. 이미 난 학생으로 지낸 시간보다 사회인으로 지낸 시간이 훨씬 긴 사람이 되었고, 밥벌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밥벌이가 얼마나 내 자존감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도 남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


요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다시 의욕을 낼 것인가'이다. 나는 다시 직장을 가져야하고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여자친구로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동료로서 제몫을 해야 한다.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틀렸거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겐 다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 무리하게 의욕을 내고 싶진 않지만 무기력한 시간들이 너무 길어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꽤 긴 일기가 되었네. 사실 딱히 오늘 쓰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이직일기'라는 매거진 이름에 걸맞는 내용의 글을 그냥 써보고 싶었다. 올해의 가을은 나에게 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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