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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토정로

#2 맑은 날 한가롭게 거닐기 좋은 합정과 상수 사이

by 브라이스와 줄리

한 달 전, 마포구로 이사를 했다. 내가 머물게 된 길은 '토정로'라는 곳이다. 뜻은 정확히 모르겠다. 그런데 '토정로'라는 어감은 왠지 좋다. 토요일의 '토'와 정답다의 '정'이 만나 토정로가 아닐까. 내 나름의 해석을 붙여본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카메라 실력은 전혀 없지만 좋은 기계의 힘을 빌려 집앞 토정로를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들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평일에 지쳤던 마음을 위로받는 짧은 일탈. 우리 동네를 거닐면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알 수 있다는 기쁨의 발견. 이 정도로 해두고, 사진을 보며 스친 감정들을 글자로 풀어보고자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조립했다. 날은 꽤 뜨겁고, 등 뒤에 땀이 벌써 주룩 흐르지만 맑은 하늘과 조화를 이룬 전신주와 십자가를 담아 한 컷.


토정로에는 '당인리발전소'가 있다. 발전소는 지하에, 공원은 지상에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아무래도 이 지게차는 발전소의 업무를 돕기위한 차였겠지. 처음에는 번호판을 그대로 다 담아 찍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잘랐다. 번호판 너머 백미러에 찍힌 내 자신과 그 뒤 마을버스 안내도가 반가와서.


당인리발전소 건설이 한창 진행되는 모습. 어떤 발전소가 올라오게 될까, 혹시 누군가는 반대하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까. 모두가 반가울 수 있는 해답이 나오면 좋으련만.


'용무 외 출입금지'. 위험물질을 다루는 곳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그 옆에 그림은 다소 귀엽다.


우리 집앞을 지나는 마을버스 '마포 07번'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타진 않았다. 걷기에도 좋은 길이기에 :) 운행노선 안내도가 오래돼서 말려올라간 것이 정겹다.


마을버스 승차 안내 밑에 붙은 광고판. 한 번도 눈길준 적이 없었다. '마고성의 비밀'은 뭘까. 종교적 의미가 담긴 소설일까. 10년 전에 쓰여진 책일까. 그때도 지금도 인류문명은 늘 위기다.


쓰레기, 재활용 버리는 곳에 내놓여진 '토마스 킥보드'. 아이는 더 이상 킥보드를 탈 수 없을 만큼 자랐을 것이다. 아이의 발이 되준 킥보드, 열심히 달렸을게다. 수고 많았어요.


BEAUTY SALON. 말 그대로 미용실이다. 90년대 순정만화에서 보던 그림체의 여성이 그려져 있다.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광고등. 햇빛에 반사된 모습이 반가워서 찰칵.


임대료 난에 합정역 메인 골목에서 조용한 곳으로 이사왔다는 은하수다방. 이따금 여기에 앉아 있다보면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노래가 카페에서 들려오곤 한다. 여기선 좀 더 안정적으로 다방을 꾸려가시겠지. 다행히 손님은 여전히 많다. 밖도 확 트여있어 맑은 날 머무르고 싶은 곳.


이곳은 외국이 아니다. 서울 토정로 어딘가이다.


이 봉고에는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담겨있을까. 그만큼 생활의 무게도 한 가득 담겨있겠지. 쌓인 먼지와 얼룩만큼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어깨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 어깨 너머에는 과일이 한 가득.


세차하기 참 좋은 날, 날씨다. 부디 내일도 이런 날씨가 이어지길. 세차하는 사람에게 제일 두려운 것은 '다음날 비'다.


여기저기 얽힌 전선 사이로 보이는 두둥실 구름. 조잡한 듯 정리돼 보이는 풍경, 앞으로도 종종 눈여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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