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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Feb 16. 2018

'인류애'를 말한 강철의 연금술사

어렸을 때부터 봤었던 만화의 결말을 드디어 본 뒤

(애니메이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학교 나이 때쯤이던가. 나는 만화책 보길 참 좋아했다. 좋아하는 만화는 일부러 부모님을 졸라 구매해 소장했다. 하지만 만화책의 완결권까지 모두 구매해본 적은 없다. 특히 현재진행형인 만화의 경우 끝까지 읽어본 적도 없다.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처럼 만화계의 고전으로 꼽히는 완결만화는 읽어봤어도, 원피스나 나루토, 블리치, 강철의연금술사 등 소년만화를 모두 읽어보지 못했다. 커가면서 관심이 다른데로 옮겨가고, 닥쳐오는 일들에 쫓긴 탓이라는 게 내 핑계다.


모험을 다룬 만화 중 '강철의 연금술사'는 내가 정말 애정하던 만화였다. 중학교 때 13~14권 정도까지 모았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관심사가 바뀌면서 결말을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땐 드라마와 같은 '실물을 다룬 콘텐츠'에 더 관심을 쏟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땐 드라마PD나 작가가 되고싶은 꿈도 꿨으니까)


한동안 내 기억 한 켠에 숨어있던 강철의 연금술사를 다시 발견한 건 올해 초다. 취업에 성공하고, 일본으로 여행도 몇 번 다니면서 다시 일본의 매력에 빠졌다. 앞서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자주 보던 콘텐츠는 일본만화, 일본드라마, 일본게임(!)이었다. 일본어를 지금도 못하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기초일본어' 과목을 두 번이나 수강했다. 여행을 계기로 일본어를 다시 YE와 배우기로 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의 일본어 콘텐츠를 공부 핑계 삼아 들춰봤다.


그때 다시 만난 것이 '강철의 연금술사-브라더후드(Brotherhood)'였다. 원작을 충실하게 리메이크한 버전이란 걸 알게됐다. 오리지널 애니보단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가치를 준다는 것도 알게됐다. 마침 원작인 만화책의 결말도 다 못 본 나였기에 한 편에 20분 남짓하는 애니를 보는 편이 더 적합했다.


20분씩 총 60여편이었지만 한 편의 길이가 짧아 보는데 부담이 없었다. 일하는 날엔 자기 전에 틈틈이 한 편씩 보다 잠들곤 했다. 그러다 이번 설을 맞이하면서 작정하고 밀린 30여편을 몰아봤다.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보다가 밥먹고, 다시 보다 낮잠 자고, 저녁 먹고 또 보는 일정을 1.5일간 소화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작이라고 한다. (요샌 이런 작품을 '띵작'이라고도 하더라) 나 역시 작정하고 보기 시작한 때부턴 끊기가 어려웠다. 20분 만에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소위 '떡밥'이 아주 잘 숨겨져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연금술'과 '연단술'이라는 생소한 기술을 끌어들인다. 재료를 '등가교환'할 양을 넣으면 연금술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등가교환은 애니메이션의 핵심 가치관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에드워드와 엘릭이 모험을 하게 되는 계기다.


가족을 떠난 아버지 대신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형제는, 죽은 어머니를 연금술로 되살리길 꿈꾼다. 하지만 실패. 그로 인해 형은 팔과 다리 각각 하나를, 동생은 몸 전체를 잃었다. 등가교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이걸 되찾기 위해 시작한 모험이 강철의 연금술사의 골자다.


몇 자의 글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세상을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순히 몸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형제의 여행은 인구 5000만명의 나라를 구하는 거대한 스케일로 발전한다. 이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형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한 '등가교환'의 법칙이 깨지는 것을 보여준다. 10을 원하면 11을 내어준다고 하는 것.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공식을 깬 것이다.


특히 형인 에드워드는 동생의 몸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알고 있는 연금술의 힘을 상징하는 '진리의 문'을 내놓는다. 연금술 없이 살아도 좋느냐는 '진리'의 질문에 연금술이 없어도 내겐 사람들이 있다고 대답한다.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동료' '함께함'을 보여주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감동을 느끼고, 뭐랄까 위로를 느꼈다.


제목에 쓰인 '브라더후드'라는 단어는 형제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네이버 어학사전에선 인류애라는 뜻을 먼저 내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철의 연금술사가 보여준 브라더후드는 둘 다 가졌다. 서로를 목숨을 내어줄 만한 형제애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또는 스쳐지나갔거나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인류애가 나타났다.


이 나이 먹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런 감동을 느꼈다고 줄줄 쓰는게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상하게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인류애가 실제로 우리 인생에선 보기 힘든 사랑의 형태라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며칠 간 난 인류애를 온 에너지로 표현한 작품을 '정주행'했지만, 슬프게도 내게 인류애는 없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세상을 구하는 '강철의 연금술사-브라더후드'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정도로 감상은 마무리하고, 좋은 만화를 보면서도 반대의 마음이 들었던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최근 기사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부장이나 이사처럼 회사 내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봤다. 나도 정말 그렇다. 내 주변에는 따르고 싶고, 좋은 분들이 참 많지만, 이와 별개로 나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사회적 명망을 얻기 위해 온힘을 다해 애써야하는 사회 구조는 혐오한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콘텐츠는 '무한도전' 또 오늘 완주한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열심'이 가득 찬 것들이었지만, 정작 내가 꿈꾸는 건 '효리네 민박'이다. 효리네 민박에서 내가 보는 건 거대한 인류애보단 소소한 사랑일 뿐이다.


이번 설에도 1.5일 내내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애니메이션을 주구장창 볼 수 있던 건 내게 큰 행복이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 불안감도 있었다. 이런 내가 일을 오래오래 잘할 수 있을까? 2~3일에 달하는 달콤한 휴식, 이런 것을 고대하면 30일, 또는 60일, 90일을 참는 삶이 옳은걸까?


답답했다. 나는 세상을 바꿔 뭔가를 이뤄보겠다는 정치인들과 같은 사명자들의 마음이 도저히 생기질 않는다. 솔직히 혐오할 때가 더 많다.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들, 친구들 정도만 여력이 닿는대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이고 싶다. 대단한 일을 해내고 이름을 날린다? 한때의 감정으로 머무르곤 만다. 이력서 한 줄이거나 먼 훗날 술자리에서의 씹을거리 정도겠지.


이런 허무주의가 직장을 얻고난 뒤부터 심해졌다. 몇 차례의 격무와 휴일이 교차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고민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잃어버린 자신들의 몸을 되찾으려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구출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목표를 이룬 뒤엔 넓은 세상을 알아보겠다며 여행길에 올랐다.


어떤 선배는 해마다 한 번씩 여행을 떠나는 맛에 산다고 한다. 누군가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해야 하는 것'을 위해 살았다. 교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니까, 대학입학을 해야 하니까,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취업 이후엔 목표가 사라졌다. 나는 이 회사에서 '어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냥 써야 하니까 쓰고, 새로운 것이 궁금하지도 않다. 가끔 보람찬 일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재미없거나 알고싶지 않았던 사실이고, 다루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이것과는 별도다. 이건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키워갔고, 우리가 더 오래 함께 일 때 더 행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가정을 이루겟단 결정을 한 것이다. 적어도 내게 이것은 대입이나 취업처럼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내가 깨어서 마주하는 상황들은 '일과 관련된 상황'이 더 많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못 견디게 싫은 것이다. 사실 혐오에 가까울 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5일 힘들면 2일은 즐거운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그런데 5일이 즐겁고 2일이 힘들 순 없을까. 현실을 몸에 받아들이려는 이 상황에서 난 여전히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또 누군가는 내게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배부른 소리가 맞긴 하다. 난 정말 너무나도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사람이 너무나도 주변에 많고, 삶을 사는데 있어 여러 모양으로 여력이 있는 상황이다. 아마 내가 고민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수많은 감사거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거다.


부모님께 이런 철없는 고민을 압축해 "일하기 싫어!"라고 늘어놓으니 YE와 나누라고 핀잔을 주셨다. YE는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는 내게 같이 고민하며 대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나보단 더 많은 경험을 했던 인생 선배로서도 고민을 십분 이해준다.


어쩌면 머잖아 새로운 도전을 해볼지도 모르겠다. 5일을 기뻐하고, 2일은 노력하는 삶. 매일매일 감사를 할 수 있는 삶. 일을 놓을 수 있는 휴일에 오히려 깊은 고민과 허무주의에 빠져들지 않는 삶. 아마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혼자아니겠지. 같이 세울 새로운 목표는 아마 효리네민박 못잖은 우리네민박을 실현하는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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