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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Dec 29. 2018

약속 없는 토요일

[서른유부남]아빠는 아니고, 싱글도 아니고, 연애중도 아닌 서른의 휴일

2018년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모처럼 아무 약속 없고, 거의 혼자 보낸 휴일이었다. 내 입장에선 참 알찼다. 이날 했던 을 그냥 정리해보고 싶다. 집안일도, 게임도, 운동도 이것저것했던 것이 참 즐거웠다.


아침엔 급히 눈을 떴다. 아내가 1년에 한 두번 있는 당직에 걸린 날이었다. 원래 계획은 평소처럼 아내가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키로 했다. 그런데 맘처럼 되지 않는 것. 늦잠을 자버렸다. 대중교통으로는 촉박하고, 택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잠결에 택시를 타보라고 제안했다. 내심 서운해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투덜대면서 급히 옷을 입었다. 나가는데 3분이면 충분했다. 차에 타기까진 계속 투덜거렸다. 진작 깨웠으면 미리 준비했지 않겠느냐 하는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차로 태워달라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게 아내의 설명이다.


막상 운전을 시작하니, 상쾌했다. 밀리지 않는 토요일 오전 출근길. 지각도 안했고, 심지어 시간이 남아 커피도 한 잔 얻어먹었다. 평소 같은 토요일이면 그 시간까지 늘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커피 덕분에 잠도 깨우고 이런저런 일을 했다. 조금 쌓인 설거지를 하고 일주일치 빨래를 부지런히 돌렸다.


빨래는 내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교환학생,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는 부모님이 전부 해주셨다. 아직 드럼세제, 섬유유연제 양 조절이 쉽지만은 않다. 눈치껏 아내에게 카톡으로 방법을 물었다. 세제를 조금 많이 넣는 편인 나를 위해 아내는 세탁기 헹굼모드를 한 번 더 추가하면 된다고 일러줬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두고, 못다 읽은 책들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당직업무가 다소 여유있는 아내와 카톡으로 가계 상황을 점검한다. 저축과 밀린 카드 선결제, 사고 싶은 물건들 등을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간다.

부엌에서 멀티태스킹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아내는 오전근무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미리 데울 음식들을 올려둔다. 밥 짓는 일은 주로 내 몫이다. 군 시절 장교식당에서 일한 게 도움이 된다. 쌀을 물에 담가 휘휘 저어 씻는 일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하고 새 물을 밥솥 내 그어진 눈금에 맞춰 둔다. 사실 감으로 하는 게 맞다. 그날그날 마른밥, 질은밥 다른 밥이 나온다. 오늘은 특식으로 새로 나온 해물안성탕면을 끓였다. 역시 라면은 진리다.


밥 먹는데까지는 20분도 안 걸렸다. 전날 방송한 '나혼자산다'를 틀어놓고 두런두런 떠들며 밥을 먹는다. 후식 준비는 아내 몫이다. 딸기를 씻어 내주고, 귤을 준다. 아마 혼자였으면 여기까진 못 챙겼을게다. 나는 커피를 내린다. 카페를 따로 갈 필요가 없다.


아내는 오늘 바빴다. 저녁에는 송년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약속이 없지만 그렇게 아쉽진 않다. 다만 저녁 메뉴가 애매했을 뿐(이게 아쉬운건가). 시간이 남으니 아내와 즐길거리를 찾아본다. 크리스마스 전에 선물로 사준 닌텐도 스위치가 요새 우리의 장난감이다. 어제는 그토록 바라던 '저스트댄스 2019'를 샀다. e숍에서 할인하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 저렴하게 구매했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시간이 빠듯해 딱 한 판만 하기로 했다. 둘이 티비를 앞에 두고 서서 몸을 휘적이다보면 금세 땀이 난다. 스트레스풀이+다이어트+부부의 친밀도 상승 등 여러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하다!


아내가 약속으로 가고 또다시 혼자 남았다. 그래도 할 일이 많다. 먼저 닌텐도부터다. 마리오테니스를 아내가 연애 시절 선물로 먼저 줬었는데, 이거 깨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초창기고, 생각보다 많이 지지만 승부욕을 발동케 한다. 스토리모드 레벨이 이제 25정도 됐나.


한 30분 신나게 하고 그 다음은 그동안 쌓아둔 분리수거 버리기다.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는 시스템이 좋은 편(?)이다. 재활용품 버리는 날짜가 지정돼있지 않아 원할 때 분리수거를 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쳐 나가서 음식물쓰레기도 버리고, 이것저것 분리수거도 한다. 이것도 해보니 쓰레기가 이렇게 많았음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방법도 생각보다 현대화(?)해 있다는 것, 종이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느 것. 비닐, 스티르폼 등의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 어둑해진 저녁에 분리수거를 하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은 터라 운동을 하기로 했다. 마침 저녁이 되니 어플 '미세미세'가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으로 괜찮아졌다고 알려왔다. 먼저 동네 탐방에 나섰다. 내가 못 본 카페, 식당은 없는지 찾아봤다. 정처없이 떠돌다보니 20분을 넘게 떠돌았다. 처음 보는 카페도 많았다. 하지만 들어가진 못했다. 꾀죄죄한 내 모습, 혼자인 나는 이때만큼은 아쉬웠다. 망원동이 점점 뜨다보니 곳곳에 사람들이 들어차있었다. 동네 주민이 아닌 듯한 사람도 많았고, 동네주민들은 고깃집 곳곳에서 자리를 채운 모습이었다.


점심이 다소 늦었기에 달리기를 한 번 하고 저녁을 먹기로 결심했다. 집 근처 체육센터 앞 운동장을 세 바퀴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바퀴 반쯤 되니 숨소리가 "허억 허억"하는 진성 숨소리가 되더라. 체력이 엉망이다. 부끄럽지만 틈틈이 뛰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우리동네 버스종점이면서 운동장 쪽에 쓰인 나태주 시인의 행복

운동을 짧게 끝내고 다시 걷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사돈댁에서 보내온 대구로 맛있는 대구탕을 해드셨다는 연락. 아뿔싸, 진작 연락할 걸. 고민하다 안했는데 아쉬웠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으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엄마가 전해온 감사인사에 장인장모께도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전화드렸더니 반겨주시는 두 분, 혼자 있으니 심심하지 않느냐는 장인의 위로. 새해인사를 기약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저녁은 보쌈도시락. 집 근처에 있는 보쌈집이다. 입간판에 맛나보이는 사진에 끌렸다. 7000원 정도면 가격도 준수하다. 요새 1인분이 7000원이면 괜찮은 시대다. 지나는 가게들 곳곳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음식들을 먹고 있지만 나는 괜찮다(안 괜찮은 건가). 집에 와서 한끼 기분 좋게 먹었다. 사실 내일 손님이 오시는터라 또 밥을 짓기가 싫었다(핑계).

식사 후 뒤늦은 샤워를 했다. 종일 씻지도 않고 다녔다. 반성한다.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그래도 이는 닦았다). 개운하게 소파로 돌아와 브런치를 키니, 케이블 채널 어딘가에서 연애의 참견을 재방송을 방영 중이다. 연애의 참견은 소위 네이트판에 올라올만한 애틋하거나 황당하거나 화나는 연애 사연들을 골라 극으로 풀고, 김숙 서장훈 한혜진 등 패널들이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보다 재밌다. 사실 빨려들어가는 묘미가 있다. 원래부터 남의 연애 얘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실제라는 연애 이야기를 극으로 풀었으니 더 재밌지. 아내와 틈나는대로 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12년 지기 남녀가 번번이 어긋나는 사연을 봤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너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둘 다 상대에 대한 마음은 있으면서 끝내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남자에겐 여자친구가 생겨버린 상태. 그 시점에서 사연은 끝났다. 패널들의 조언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은 없었나 돌이켜본다(이제와서 무엇하나). 없었다. 지금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부디 그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은 행복한 결실을 맺길!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벌써 몇 문단을 써내려갔다. 이제는 MBC연예대상이다. 나혼자산다 얼마나 상받을까 궁금하다. 이제 글은 줄여야지..


마무리하자면 오늘 하고 싶은 이 얘기였다. 결혼하고 온전히 하루 휴식하는 날이 생기니 정말 좋다. 내 뜻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아빠가 아내와 내게 각각 선물해준 책이 있다. 결혼설명서 라는 책인데, 성경말씀에 기반해 예비부부들에 대한 교육을 하는 내용이다. 마음에 담아두고픈 내용들이 많았지만 마지막 즈음에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가정은 충전소라는 것이다. 부부는 세상에 나가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텐데, 가정은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충전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듯 하다. 세상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애쓰고, 가정에선 충전을 하는. 그런 가정을 아내와 함께 꾸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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