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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Apr 30. 2021

아니, 이 좋은걸!

나는 장롱면허 10년차'였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약 한 달 전부터 주행이 가능한 사람이 되었기에(후후). 2012년, 첫 회사를 관두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엿한 성인인데 면허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하는 마음이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왜냐... 이명박 정부 시절, 잠깐 운전면허 시험을 간소화한 적이 있는데 나도 그때 땄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허 자체는 수월하게 땄지만 내 운전 실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늘 자리했다. 게다가 서울 시내를 주로 다녔기에 운전의 필요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서른이 넘도록 남의 차만 얻어타며 살았다.


그러다 나처럼 장롱면허 신세던 친구들이 하나둘 차를 몰기 시작했고, 나도 조금씩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 이런건 아니었지만 서른이 넘고 결혼도 해보니 그 나이대에 다들 하는 것들은 어느정도 할 줄 알아야겠더라. 쌩뚱맞은 얘기지만 나는 오이를 싫어하는데 김밥에 있는 오이 정도는 이제 남들 앞에서 빼지 않고 먹을 수 있어야겠다라는 그런 마음이랄까.


아이를 낳고나니 운전은 그런 존재를 넘어서 '하지 못하면 불편한 일'이 되었고, 용기를 내서 배우기 시작했다. 도로연수를 10시간 받고 난 후 아는 길은 혼자서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연수가 끝나고 감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평일이나 주말 이른 아침에 몇 번씩 나가기도 했다. 아직 음악을 즐기면서 타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운전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아니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배운거야??? 진작 좀 배울걸!!!!!

정말 그동안 뭐했나 싶을 정도로 더 일찍 배울걸 싶었다. 지금이라도 배워서 다행이다.

어제는 처음으로 아이를 태우고 남편 없이 서울 근교에 있는 언니집에 다녀왔다. 혼자 운전하는 것과 아이가 함께 타는 것은 긴장의 급이 달랐다. 일단 내가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각종 변수(아이가 응가를 하거나 울거나 졸려서 쪽쪽이를 찾는다는가 하는 등등)에 대처할 수가 없고, 내가 과연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일단 운전에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출발 전에 아이 앞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모든 물건들을 올려놓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한 차례 약간의 위기가 있었으나 다행히 아이는 잘 도와주었고 무사히 언니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갈 때는 잠이 들어서 수월하게 올 수 있었다. 비가 갠 뒤 해가 따스하게 들어오는 운전석에서 도로 옆으로 난 가로수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은 꽤 좋았다. 아주 기분 좋은 오후였다.


솔직히 아이가 없었으면 나는 '언젠가 운전을 배워야지'하고 생각만 하다가 계속 차일피일 미뤘을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웠지만 배우길 잘했다. 무언가를 전혀 할 수 없다가 할 수 있게 된 건 오랜만에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자 성취감이었다. 덕분에 좀 더 으른이 된 기분도 들고!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아이와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기저기 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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