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년들의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
넷플릭스에 입문한 이후로 마음에 드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한 두 편씩 보고 있다.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비판에 속아 가입만 해두었다가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뒤적거려보니 의외로 끌리는 제목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만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이랬다.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 1200원으로 하루를 산다고? 진짬뽕도 1500원을 하는 시대에 어떻게 그 돈으로 살 수 있을까. 클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는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정직한 다큐멘터리다. 50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에 청년들의 8주 간의 도전이 담겨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하루 1달러로 사는 일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1달러의 돈만을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 분명 있다)
영상은 미국인들의 평범한 삶과 어디인지 모를 남미 지역의 한 마을의 삶을 대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뉴욕 출신의 크리스와 시애틀 출신의 자크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친근하게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건 과테말라에 마을에서 사는 12살 아이, 치노다. 그는 하루에 1달러도 쓰지 못하는 삶을 산다. 주거와 생계를 비롯해 누가 봐도 열악해 보이는 그의 삶의 장면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는 충격적인 통계를 제시한다.
치노처럼 하루에 1달러로 사는 인구가 전 세계에 1.1billion, 즉 11억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지면 위에서 스치듯 봤던 통계였다. 하지만 영상과 함께 전면으로 등장하는 이 수치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국제 개발을 전공하는 두 청년이 교과서에 없는 것을 보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치노가 사는 마을에서 살아보기를 결심한다. 11억 명이 살고 있는 방식에 동참한다는 것,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도전의 당위성은 충분했다.
영상 촬영을 도와줄 두 청년까지 포함해 총 4명의 미국 청년들이 과테말라의 소외된 지역, 인구 300명의 페나 블랑카로 떠났다. 이들은 8주, 총 56일 동안 하루 1달러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다. 설렘과 흥분, 두려움을 안고 보낸 첫날밤을 보낸 뒤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 방식과 마을, 주민들을 소개한다.
이들에게는 정교한 프로젝트 계획이 있었다. 하루 수입이 들쭉날쭉한 마을 주민들의 비슷한 모양새로 살기 위해 수입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매일 1인당 1달러씩 지급되는 것이 아닌, 매일 아침 제비뽑기를 통해 0~9달러 사이의 수입이 있도록 만들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일용 노동자나 농부로 산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청년들의 삶 역시 이들만큼 현실적으로 만든 조치였다.
한 가지 더, 이들은 마이크로 파이낸스라는 빈민 대출 시스템을 이용해 125달러를 빌려 주거 공간과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땅을 구매했다. 15일마다 6.25달러라는 할부금을 내는 조건이었다. 청년들은 두 가지 실험에 도전했다. 들쭉날쭉한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기, 또 빈민 대출을 활용해 삶을 일구어 나가기. 8주 동안의 체험의 핵심이었다.
청년들은 작은 땅에 무를 심고,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지만 변수는 처음의 멋진 계획과 포부를 번번이 흔들었다. 농사를 짓는 법을 몰라 이웃의 도움을 얻어야 했고, 눈으로 봐도 깨끗하지 않은 물을 식수로 먹어야 했다. 번화가에 나갔다 오는데도 비용을 지불하다 보니 돈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 이들은 식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멤버 중에 한 명이 뱃속에 기생충이 살게 되는 고통을 앓기도 했다. 이 때도 그들의 예산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기존의 비상약으로만 버텨야 했다.
의료 문제라는 거대한 짐이 그들에게 지워지면서 이들은 새로운 대출을 생각했다. 조심스레 일반 은행에 가서 대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출 조건은 엄격했다. 전기세 영수증, 수입 증명, 돈이 들어 있는 계좌 번호, 각종 청구서, 보증 증명인 두 명의 서명까지 필요했다. 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주민이 많은 국가에서 어쩌면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살 구멍은 있었다. 먼저 친구이자 이웃이 된 마을 주민들이 있었다. 평생 본 적 없는 외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젊은 가장이 있었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언어 교류를 한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미국 청년들이 학교를 방문할 때면 연예인이 방문한 듯 학생 전체가 신이 났다. 또 허기가 질 때 이웃은 1년에 한두 번 먹는 전통 식사를 청년들에게 내어주기도 했다.
더불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 이들은 이웃을 통해 그라민의 존재를 알게 된다. 청년은 무사히 회복하고 뒤이어 기존 은행과 그라민의 대출 기준을 뚜렷하게 비교한다. 신분증만 보면 대출해주는 그라민 덕에 빈민들은 자신들이 일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다. 저축 계좌도 그라민을 통해 열어서 심지어는 저축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삶의 작은 변화는 이들의 수입이 1달러에서 2달러로 정확히 2배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프로젝트의 끝이 다가오면서 이들은 그라민을 통해 대출을 받은 자신들과 이웃들의 삶의 변화에 주목한다. 대출 통해 재배한 무가 결실을 맺어 빚을 갚았다. 이웃들은 더 안정적으로 가족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의 권익이 회복되었고, 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청년들의 감사와 뿌듯한 마무리로 이어지면서 다큐멘터리는 짧게 끝맺음을 한다. 이들과 가깝게 지내던 청년 가장은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꽃핀다.
다큐멘터리는 하루에 1달러로만 생활하는 것은 힘든 것이라고 몸소 보여준다. 이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지만 체험과 보여주기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이들은 그 생활을 바꿔나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빈민 대출과 교육을 제시한다.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특히 1달러 수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1.1억 명에게 효과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과테말라의 마을 페나 블랑카의 사람들을 통해 확인했다.
대학생이었던 미국 청년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고 또 페나 블랑카 마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행복과 변화를 남기고 돌아갔다. 이들의 결론은 우리의 작은 변화와 영향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큐가 그렇듯 희망을 노래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8주의 체험 기간이 있었다하더라도 미국에 돌아간 그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도전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상을 남긴 일에 감사하다. 그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페나 블랑카 마을 사람들의 웃음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정말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빈민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끌어올린 점에서 이들의 노력은 미디어는 끝없이 이슈화를 해야 한다는 지론을 정확히 이행한 것이었다. 내가 하지 못한 작은 변화를 이들이 했다는 점에 감사하다.
+) 더하여
글을 모두 다 쓰고 이들의 이후 활동을 발견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추진했던 크리스와 자크가 만든 기부 블로그다. 여전히 이들은 페나 블랑카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었으며, 또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http://livingono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