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엔 가슴 뜨거운 투사였다가 지금은 초점이 흐려진, 그저그런 정치인 또는 지식인이 된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보통 어떤 일을 결정(투표라든지..)하거나 상대를 판단할 때, 미래에 그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내다보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기에 그 일 혹은 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너무 다른 경우를 보면 대체 무엇을 근거로 판단을 내려야하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나,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그 차이가 클수록 그 회의감은 더 크다.
사람이든 세상일이든 늘 '한결'같기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므로 변한다는 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에 악(惡)으로 작용될 땐 얘기가 다르다. 개인 또는 사소한 일상의 변화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쯤, 드라마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의 언론 인터뷰를 보았다. 꽤 많은 양이었음에도 빨려들어가듯 읽어내려갔다. 특히 아래 내용이 너무나 와 닿았다.
― 현 시점에서 결말은 공개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해리포터'의 덤블도어가 학생들에게 한 말이 있다. "여러분은 이제 옳은 길과 쉬운 길 중에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전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진 옳은 길의 반대말은 나쁜 길, 잘못된 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대놓고 나쁜 길을 선택하진 않는다. 다만 옳은 길이 너무 어려워 보이고 너무 가시밭길이니까 그 옆에 쉬워 보이는 길로 한 발 살짝 뺀 것이다. 다만 그 길의 끝은 완전히 다른 갈래임을 덤블도어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우리 보통 사람은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역시나 제일 처음 한 발에서 많이 실수한다. 극 중 여진이처럼 제 갈 길부터 잘 지켜야 등장인물 중에 나쁜 놈들을 욕하고 살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7회에서 이창준(유재명)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다. 아무 것도 아닌 한 번의 식사 자리. 접대가 아닌 선의의 대접. 돌아가면서 낼 수 있지만 다만 그 날따라 내가 안 냈을 뿐인 술값. 바로 그 밥 한 그릇이, 술 한 잔의 신세가 다음 만남을 단칼에 거절하는 걸 거부한다. 인사는 안면이 되고 인맥이 된다. 인맥은 힘이지만 어느 순간 약점이 되고 더 올라서면 치부다. 첫 발에서 빼야 한다. 첫 시작에서. 마지막에서 빼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뭔지 아니까, 저게 무슨 말인지 아니까 이제 그럴 나이도 위치도 눈치도 있을 만큼의 사람이 됐으니까 마치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변해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됐나' 욕했지만, 정작 나는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쉬운 길'을 택하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사람은 아니기에 나의 '쉬운 선택'이 실제로 작용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창준 같은 사회 유력인사가 아니더라도, 사회 악(惡)이라고 불릴 만큼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사소한 행동과 결정이 결국은 조금씩 쌓이고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변에서 닮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볼 때면 그 무게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모두 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라기보다는 적어도 내 자신이 등신같다, 쪼다같다고 느낄 만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건 약간... 인생의 자존심과도 같은 문제다.
그나저나 이수연 작가, 참 멋지다. 몇 몇 인터뷰와 드라마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순 없겠지만 뜨거움이 있는 사람이라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창준... 힝 마지막회는 참 멋지다고 해야하나, 뭐라고 해야하나. 선과 악의 경계에서 그래도 마지막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그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비현실적인 엔딩이기에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 주변에 좋은 어른이 많았으면, 앞으로 더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