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제 우리 가족이야,” mum said.
1월 말 속초여행에서 청혼을 받은 나는 그렇게 P와 약혼을 하게 되었고, 한국 문화에 맞게 엄마 아빠에게도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aka 결밍아웃!)
오랜 기간 동안 롱디를 하던 우리를 지켜봤기에,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다만, 말을 꺼내기에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게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고 한다.
정말 기본적인 한국어만 할 수 있는 P는 우리 부모님에게 한국어로 편지를 썼다. 영어로 A4를 빽빽하게 채운 구글 워드 파일을 보여주더니, 한국어로 번역해 달란다. 스타벅스에서 그 글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또 생각하니 눈물이 그렁..)
나였으면 20분 정도면 썼을 텐데, 세상에… 그 편지를 장장 2시간에 걸쳐 편지를 썼다. 다 쓰고 나서 보니 편지지로 두 장이다 썼다.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쓰다보니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나보다. 손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모습도 귀엽다.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감사하면서도, 이런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 또 한 번 감사했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원래 이렇게 결혼 승낙받으러 갈 때는 선물도 제대로 준비해 가야 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바리바리 사서 집으로 도착했다.
엄마는 날이 날인 만큼 갈비찜, 월남쌈, 등등 엄청 준비를 했다. 혼자 준비했을 엄마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밥 먹고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그래서 너네 오늘 온 이유를 말해봐”라면서 얘기를 꺼냈다.
웃으면서 멋쩍게 P가 편지지를 꺼낸다. 영국에서는 청혼 전에 무조건 아버님에게 허락을 먼저 받고 청혼해야 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뒤늦게 편지로 전한다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편지를 읽기 시작한 엄마는 아까의 나처럼 울면서 편지를 읽었다. 아빠도 편지를 마저 읽었는데…. 온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이었으면 이미 직장도 잡혀있을 테지만, 우리는 사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년 1월 학기를 목표로 다시 영국 고등학교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고, 그에 따라 집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내 비자가 되면 영국으로 나서 나도 슬슬 일을 구해야겠지. 이런 상황이니 딸을 보내는 것도 속상한데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될까. 그냥 웃으면서 축하해 대신에, 언제 어떻게 일을 구할 것이고, 너의 계획은 뭐이며, 어떻게 내 딸과 함께 정착할 것이냐에 대해서 질문 공격을 당했다.
진지하게 답변에 응한 P에게, 널 믿는다면서 엄마는 “넌 이제 우리 가족이야.”라고 따듯하게 말해줬다. 아빠도 나중엔 구글 번역기로 뭔가를 직접 얘기하려고 한다. “말만으로 약속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다 같이 내가 예약하고 싶은 웨딩 베뉴를 보러 갔다. 이 전에 방문했던 곳보다 크기고 하고 경치도 좋아서 우리는 이곳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외할머니 산소에 들렸다. 절을 할 줄 모르는 P에게 절하는 법도 알려주고, 술도 따라 올렸다. “엄마, 엄마가 제일 예뻐하던 손녀랑 결혼할 사람이랑 같이 왔어요. 우리 엄마 외국인에게 절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네.”
2022년 10월, 우리 결혼해요 :)
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