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침투가 곤란한 사람들

영화 <her>을 보고

by 물 결

'사고'와 '상념'은 인간만이 가진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누군가 지시한 내용을 답습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파생하여 '꿈'을 구상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적인 존재란 AI와 같은 초월적인 진행속도로 광범위한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역량만을 말하는 게 아닐 것이다. 예로들면 본인의 요구에 응해주자 울상을 지으며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순간처럼,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한낱 고철에 불과한 줄 알았던 로봇이 어떻게 상대에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무너뜨릴 줄 아느냐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할 특이점이다. 그리고 현재 AI 연구를 살펴보면 이 단계는 이미 진작에 거치고 난 이후이다. 202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들은 지금의 챗지피에게 본인의 사주와 성격을 분석을 맡기고 고민상담을 맡기는 친구로 대하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대방의 미묘한 의중을 파악하고 성격을 맞추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적절한 낱말을 던짐으로써 분위기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인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기분의 순간과 디테일한 언짢음의 기류가 존재하는 것인지 경험할 수록 소통이 나날이 조심스러워 지다 못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피곤해지는 단계까지 왔다. 대한민국의 오천만개의 성격을 가진 오천만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휴식 공간인 기숙사에서 조차 타인의 기분을 가늠하고 고려하고 스며들기 위해 '사람공부'를 그치지 않을 수 없다. AI가 제 아무리 많은 영상과 글을 통해 인간의 성격을 습득한다고 한들 이 '사람공부'의 고단함을 알까?


얼마전 구글에서 세상의 파란을 막기위해 AI에 자아가 생겼다는 연구결과를 폐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더라로 치부하기에는 AI의 편리와 일상의 침투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익숙함이 이런 결과를 앞당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볍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소통이란 단순히 내 자아로 본인과 맞는 비슷한 결의 사고체제를 가진 이들과의 대화를 이야기하는 개념만이 아니다. 시시콜콜한 스몰토크 한 개도 어떤 주제로 꺼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들이 많은데.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는 대화주제를 내놓기 까지 얼마나 기민한 고민을 필요로 하는지 AI는 모를거다.


하물며 쟁점이 되는 안건에서 합의를 도출할 때의 대화에서는 또 어떤가. 내가 가진것과 상대측에 원하는 바를 들키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자신의 목적으로 상대방을 끌어와야하는, 그 미묘하면서도 격렬한 다툼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격투장이 따로 없다. 이 모든 순간을 AI 스스로 진정으로 체감하고 괴로워하는 날이 올까. 그들을 창조한 인간도 이 '사람공부'와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매번 찾지 못해 허덕이는 데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기준, 성격적인 특성이 제각각이라, '소통'이라는 과제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인간들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한 해결이기만 한다면야 양측이 합의안에 도달하면 끝나는 일이지만, '인간관계'라는 포괄적인 문제는 인간의 평생의 삶을 고뇌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드는 총체이다. 제 아무리 프롬프트로 짜여진 판단과정으로 내뱉으면 끝이라고 한들 AI도 보통의 인간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링 위에 올라서려면 아마도 정보에 기반한 피상적인 연구만으로는 끝이 없을 것이다. 인간 세상은 AI가 소화 가능한 복잡함 보다도 더 깊은, 온 세상 사람들의 고민으로 굴러가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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