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낸다는 게 무얼까

기억을 묻기

by 물 결

타지에 온지 1년이 넘었다. 한달이며 하루며 정말 많은 일들과 감정이 몸통과 기억을 스친다. 초반에는 힘든 일로 인한 감정들과 사안의 과정을 타인에게 일일이 말로 풀어놓는다거나 자질구레한 글로 벌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찰나에 수백개씩 교차하는 감정들을 누군가한테 털어놓는다거나 일기장에 게워내지 않아도 그렇게 스스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는 세상에서 정답을 내리라고 달려든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감정을 느낄 자격도 없는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곳에 오고 난 어느날 부터는 누군가한테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희석하기 위해 시도해야하는 상황에 난생 처음 놓여봤다. 처음에는 끔찍하게 만치 겪고싶지 않았다. 이러한 순간이 나한테 찾아오지 않게 그렇게도 빌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고 말로 토해내지 않으려 삼키려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체내로 삼켜본적이 없는 존재를 삼킨다는 건 살면서 해본적 없는 낯선 행위였기에 반사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평생 그 방법을 모른 채 살아온 잘못의 결과였다. 그 순간부터를 처음에는 포기라고 매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지금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되려 기억으로나 혹은 말로 남겨두지 않고 흘려보내고 잊어버렸기에 좋았던 순간도 존재하게 됐다.

굳이 그 시점에서 뇌리에 누르고 살덩이에 새겨지지 않게 두어도 된다. 모든 감정과 소란과 사건을 기록과 흔적으로 남기려고 애썼지만 어느 시기는 때로는 그런 감정을 각인시키고 기억할 틈 없이 흘려보내는 날들도 필요하다. 당시의 진폭이 길게 지속되는 불상사를 원천적으로 막아주니 오히려 더 다행이다 싶은 날도 온다. 물론 어느때의 감정을 다시 꺼내본다는 건 그 사안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것을 읽는 오늘의 나를 받쳐주는 소중한 원료가 된다. 하지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삭막함에서 굳이 오늘 겪은 감정을 손을 쑤셔넣어 게워내고 남기려고 애쓴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하루의 마무리도 없다.


감정을 느끼던 나의 예전이 사라진 것 같아도 내가 바라던 내 이상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도 그때의 나의 모습은 언젠가 다시 내안에 돌아온다. 그것을 믿고 점점 빳빳한 장작같아지는 나를 자책하지 말자. 언젠가 그것을 녹여줄 햇살과 인연들은 반드시 다시 내게 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이가 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