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기능과 영향
건강증진에 대한 정의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율성인데,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자신의 건강에 관련된 일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의료의 기능을 생각하면, 급성기 치료 이후에는 환자와 관계를 맺고 질병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여 환자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강 증진의 정의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의료 제공시 하는 진단, 환자-의사관계와 같은 기능은 대부분 특정한 행동을 못하게 막는 일인데, 동시에 이를 통해 새로운 행동을 나타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운동을 하라고 할 수 있고, 심근 경색 이후에 술, 담배를 끊고, 식습관을 바꾸도록 할 수 있다. 때로 시간이 지나 잊혀질 수도 있겠으나,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가 수치가 나빠질 때마다 하도 지랄을(?) 해서 조금씩 하다보니 식사와 운동 습관을 바꾸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의료의 본질적인 기능은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고가서비스가 많아질수록 취약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대부분 고가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 흔하지 않은데, 수익에 도움이 되니 처방이 늘어나고, 이렇게 하다보면 환자의 자율성을 떨어뜨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료의 기능은 의료인 개인의 삶의 고유한 경험에 기반하여 교육 및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병의원 간의 시장 경쟁이 환자-의사 관계에 기반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기술 발전에 의한 고가 서비스 처방이 늘어나더라도 직접적으로 의료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집합적으로 현실에서 의학적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고 의료 이용량이 늘어나면 의료에 대한 의존성이 증가할 수 있는데, 환자 교육이나 시장 경쟁에 의해 보완될 수는 있다.
코로나 시기와 같이,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학적 기준이 갑자기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집단적으로 리더십이 필요할 수 있는데, 급성기 유행시에 감염이 발생하는 집단별로 상황에 대한 안내가 필요할 수 있다. 이는 개별 환자 진료시 나타나는 의료 기능과 유사한데, 이와 같이 집단에 공식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훨씬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시장에서는 경쟁에 의해 행동을 하면서 변화하고 혁신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집단적 기준이 어긋나면 필요한 행동을 시도하는 것을 막아, 의료 기능이 구현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막기 때문이다.
중앙에 집중된 행정의 영향
행정이 중앙에 집중된 것이 건강보험 통합 이후에 의료전달체계가 사회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진료권 별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해가면서 의료전달체계가 발전해나가는 것인데, 의료기술의 발전이 시장 경쟁에 의해 수용되는 것 외에는 집단적인 문제들을 다룰만한 조직이 없으니, 이론적인 논쟁만 이어질 뿐, 현실에서 행동 변화도 발전도 없다.
과거 어른들과 식사자리에서 과거 질병관리본부의 본부장 혹은 국장이었던 사람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인사 후에 얼마되지 않아 대뜸 하는 말이 누구 다음에 선수가 필요한데 사람을 안 보내줄거냐는 말이었다.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이긴 했는데, 속으로는 초면에 이 영감이 제정신인가 싶기는 했다. 코로나처럼 의학적 기준이 심하게 흔들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급하게 예산을 투입해서 일을 하다보면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한데, 자신들 일의 뒷처리를 해줄 사람을 안보내주냐는 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런 개소리야 무시하고 다니지만, 현실과 맞지 않게 행정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상황에서 하는 행동이란 저렇게 계급사회를 만들어 이권을 나누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사결정과 재정 배분에 깊이 관여하면서 대표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일이나, 세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나 보건관련 업무는 결국 기준을 세우는 일이고, 직접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보다 어떤 일을 멈추게 하여 다른 일들이 나타나도록 하는 일에 가깝다. 중앙에 행정 권한이 집중되어 있으니 이런 일의 의사결정이나 재정 배분 방식이 현실 문제의 단위와 어긋나고, 지식에 기반하여 대규모로 진행하니 현실 문제가 온전하게 해결될 수가 없다. 2010년 이후에 기본적 시스템은 대부분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식 기반으로 대규모로 일을 만들어서는 현실 문제를 온전히 다루기 어려웠고,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서울 동네 찌질이들의 웰빙정치
어쨌거나 이런 집단적인 업무도 명확하게 해야 할 일들이 존재하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적극적으로 행동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위와 같이 보건 업무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이에 따른 이권도 분명히 존재한다. 코로나에서 이를 감기라고 하면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듯이, 보건관련 업무를 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이후로 현실에서 집단적인 기준을 세우는 일이 너무나 지체되고 있다. 반면에, 지식 기반으로 재정을 배분하고 정치적 성과를 추구하는 행동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4년 동안 마스크 착용을 시키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감염병을 관리한 듯이 이야기하면서 예산을 타내면서 정치적 성과를 독점하려 하듯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이야기하면서 대규모 예산을 따내서는 의대정원 논란으로 싸움을 만들어내고, 예산 배분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요즘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지 빅5병원이나, 지방병원이나, 전공의나 의대생이나 안된다는 얘기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기피분야나 지방의료에 필요한 행동은 아무도 안한다.
코로나는 유행이 발생하는 집단별로 행동이 나타나고 의료는 진료권별로 변화가 나타난다. 문제의 성격에 맞게 각 단위에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변화가 수용되고 혁신이 나타난다. 이제와서 코로나가 감기라고 하거나, 전공의 이탈의 정답을 전문의 중심병원이라고 얘기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추구한다고 해서,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미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없는데, 새로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사직한 전공의들은 본인들이 필요하면 알아서 돌아올 것이다.
권력과 예산으로 흔들어놓고, 현실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이후에 정치적 성과나 추구하는 행위는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심지어 코로나나 이번 의료정책처럼 혼란이 끝난 이후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해법나 내놓으면서 집단별로 재정을 나누고 정치적 성과나 추구하면 그런 것이 웰빙정치이다.
아무것도 안하면 퇴보한다
현실에서 문제가 나타나면 이를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경제 위기에 비정규직을 늘렸으면 이후에 복지제도를 제대로 마련했어야 했고, 어설프게 부동산 시장을 키워서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코로나도 초기 위기 상황 이후에 빨리 마무리하기만 했어도 지금처럼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일이라도 마무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어설프게 넘어가서 엉망진창이 된 이후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 한다.
이번 의대정원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정말로 하기 싫어하는 병상 제한 등을 제도적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진료권별로 문제를 온전하게 다루어가도록 의사결정 권한이나 건강보험 재정을 분리해야 한다. 아니면 정치적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고 저난리를 치고 있는 서울대 학부를 아예 없애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켜보니 이런 일로 사회 문화를 확실히 바꾸게 되면 나머지 일들이 저절로 될 거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원만 낭비하고 서서히 퇴보하는 길밖에 없다. 매번 경제는 발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1도 안되는 출산율이 위기를 드러내고 있듯이, 이번에도 전문의 중심병원,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넘어간다고 해서, 기피분야나 지역의료의 문제가 개선되는 일은 없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병상 제한을 확실히 하고, 진료권별로 권한을 넘겨서 참여를 유도하면서, 나머지는 시장경쟁에 맡기면 전문의 중심병원이나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그냥 될 것이다.
나는 작은 일을 주로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런 걸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 대충이라도 정리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일을 안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