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갈 데 없으면 간다

by 배상근

20여년 전쯤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에는 IMF 이후에 본격적으로 의대 열풍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나도 어쩌다보니 의학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다른 대학에 갔다가 다시 수능쳐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고 공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때문에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누군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엄마가 공대말고 의대가면 노트북 사준다고 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강압적으로 강요된 것만도 아니었다. 인생의 선택이 반드시 의도적으로 되는 것만도 아니지만, 자기 하기 나름이고 그다지 문제가 많이 생기지도 않았다.

대구에 경북대 전자공학과와 삼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졸업만 하면 회사 입사에는 별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방 국립대 공대가 그리 성적이 높다고 보기도 어려웠지만 학생들은 갈 데가 없으면 마지막으로 삼성에 간다고 생각했다. 삼성이 일을 죽어라고 시키기도 하지만, IMF 이후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하던 시절이라 대기업에서 오래버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면서 돈도 벌고 일도 익히고 나면 이후에 스스로 선택해서 하기 나름이라 문제가 될 것은 없었던 거 같다.

요즘은 대학에 계약학과가 생기는데, 대학 시절에 기업 공부를 왜 시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재밌게 보기는 했지만, 어떤 방송사는 대놓고 기업 찬양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하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대기업 미화에 대해 여러 비판이 나왔을만 한데, 드라마는 재미로 받아들이는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던 거 같다. 삼성은 성과주의로 조직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학벌이 안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한데, 저런 걸 보고있으면 요즘에는 분위기가 다른가 싶기는 하다. 본인에게 맞는 기업에 들어가기 나름이지만, 세상 자기 거라고 떠들고 다니는 일부 대학 사람들이 아니면, 저런 영웅놀이 이야기는 호감이 생기기 어렵다. 요즘 교육이 문제인지, 외부로 드러나는 수치나 실적만 내세우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조직이 하는 일에 당연히 성과로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이후의 단계를 못 나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요즘 시스템 반도체를 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저런 식으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집단별로 영웅놀이나 하고 있으면, 우수한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한 사업이 잘 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위기가 여러번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성장한 이후에 겪었던 사건에서는 이를 잘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에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하던 시기에 컸던 사람들인데, IMF 이후에 위기를 겪은 이후에 다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지면서 직장 생활에서는 현 86세대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들은 말로는 보편적인 가치를 얘기하지만, 자신들에게 생존 위기가 찾아오면 바로 보수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하는데, 위기가 있을 때마다 제대로 극복하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일부 중산층의 희생을 묵인하면서 지나갔다. IMF 이후에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복지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부동산 폭등을 만들어서 젊은 세대가 고통받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이를 무시했다. 이번 코로나 시기에 복지제도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은 최후의 보루인데도 오랜기간 방역을 핑계로 이동을 멈추게 하면서 회생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혔고, 직업 안정성이 취약한 배달업 종사자를 대거 양산했다.

이런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사회 문화도 엉망이 되고 있다. 90년대에는 권위주의 문화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분명히 자유롭게 의사 표시를 하던 시절이라 현대사회로 가고 있었는데, IMF 이후로 차츰 보수적인 성향이 강화되더니 코로나 이후로는 권위주의 사회로 완전히 복귀했다. 요즘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마녀사냥, 영웅놀이, 편가르기 등을 여기저기서 노골적으로 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공동체가 무너져서 보편적인 가치도 지키기가 어려워 과거 80년대 이전의 군사독재나 조선 귀족사회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나 개인들의 생각은 현대 사회에 맞춰져 있는데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은 일부 권위적 집단의 노골적인 행동만 나오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언론에서 나타나는 뉴스나 보도가 이런 현상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출산율 1도 안되는 상황에서 더이상 저러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누가 저런 일을 신경쓸 여유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비판은 여기저기서 하지만 일반적으로 거대 양당이 모두 보수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국가 정책에서 기본적인 논리도 무시하면서, 권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진보가 훨씬 더 불리하다. 사회에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면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얘기해서 특정 집단을 비판만 한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지 않는데, 이마저도 아무런 논리도 없이 권위적으로 얘기하면 동력이 있을 수가 없다. 반면에 보수는 원칙만 잘 지켜도 칭찬을 받는데, 코로나 시기에 여러 원칙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번 대통령이 여러 비판을 받으면서도 법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해서는 방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코로나 시기의 문제점들이 여러가지로 알려지고 사회 질서가 무너진 데 대해 대부분 자각하고 있는데, 그 이후에도 반대편을 이유로 권위적인 방식만을 반복하고 있다. 진보라고 하는 당은 권위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서 사회 움직임을 막더니, 요즘에는 당내에 경쟁자들이 모두 사라졌는지 일당 독재라는 말도 나오던데, 집권한 보수당은 이미 기본적 질서가 회복된 상황에서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표 선거에 나와서도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내부 질서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서울대 반장선거라고 하기도 하던데, 현실에 기반하지 않고 논리도 없는 권위주의로 함께 뭉쳐있는 것을 보면 야당이나 여당이나 아무런 비전이 없는 것은 차이가 없다. 겉으로 보면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위주의로 뭉쳐서 짜고치는 웰빙정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병원은 면허에 의해 진입이 제한되어 있고, 행동에 의한 변화나 혁신이 진료과정에서 환자를 상대로 나타나는 곳이고, 자원 배분에 의해 나타나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권위적인 행동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어도 자원 배분만 명확하게 하면 이후에 회복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일에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고 별 이유도 없이 저런 방법을 썼다가는 조직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

하기야 의료 정책도 자원 제한을 제도적으로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는데, 대규모 자원 투자를 약속하고는 싸움을 붙이고, 코로나 이후 의사를 비판해서 질서잡는 것처럼 인기를 얻는 저 행동이 언제까지 정당화될 지 모르겠다. 낙인을 찍을수도 있는 정신과 개인상담을 사회 정책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 다음에도 동일한 일들이 벌어질 거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정책에 대해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정석적으로 정책을 시행했더라면 더 많은 인기를 얻었을 것이고, 이후 다른 일들을 진행하기도 더 수월했을 것이다.


예전에 삼성은 갈 데 없으면 간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대규모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자기네들끼리 다 하겠다고 엉망진창을 만들고 있는 쟤들하고는 누가 일을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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