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일부 대형병원들이 차례대로 휴진한다고 하고 있으나, 얘기하는 내용에 큰 변화는 없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정책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듯이 얘기하고 있지만, 기피 분야나 지역의료에 대한 내용은 아무것도 없고, 수도권 병상 제한과 같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면허에 의해 질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에 의료제도는 복잡할 것이 없지만, 여기저기서 행동 변화는 조금도 없이 정부에 대한 비판과 세부적인 지식 자랑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병상 등의 자원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하고, 재정이나 의사결정 권한을 진료권별로 어느정도 이양하지 않고서는 현실 문제 기반으로 의료전달체계가 갖추어지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의사는 면허제로 운영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아도 진료권별로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법이나 제도보다 이러한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앙정부에서 대규모 예산으로 세부 항목을 만들고 평가를 통해 줄세우기를 시키면, 자발적인 움직임을 막아 오히려 현실기반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지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진료권별로 의료전달체계가 형성되는 것은 환자 중등도에 따라 동네 의원에서 병원, 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진료와 후송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고 지원하는 일이 필요한데, 세부 규정을 많이 만들거나,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고혈압, 당뇨병 등록관리 사업에서 환자의 보건기관 의뢰와 교육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환자의 약물 복용과 혈압, 혈당 관리 필요성에 대해 의사들이 동의하여 기관 간의 협력체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재정 인센티브 제공이 큰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 아니다. 전문질환센터도 내부 구성원들에게 동의를 얻은 급성기 치료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보건의료 관련 사업들에서도 전문가 집단 내에서 인정받은 과정들은 효과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아무리 예산이 생겨도 현실 문제를 기반으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충분히 동의를 얻어가면서 추진해야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이러한 일은 여러 사람들의 소통과 노력이 필요한데, 아무리봐도 그런 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정부 예산이 생기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논쟁을 만들어내고 프레임을 씌우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문제를 분명히 하여 진정한 경쟁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으나, 끝없이 불필요한 논쟁만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정 조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는 일이 없으면 남는 일은 예산을 나누는 것 뿐이다.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 예산지원을 받은 공공병원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듯이, 불필요한 재정 지원이 많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부적인 항목에서 성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런 일이 기피분야나 지역의료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도,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나, 의료기술 발전은 충분하고 세부적으로 아무리 복잡한 얘기를 해봐야 현실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단순하기 마련이다.
현실에 변화가 있을 수가 없으니 문제는 그대로 남을 것인데, 기대할 것은 이번에 심각한 문제를 겪은 의사들의 자율적인 의지 뿐이다. 면허에 의해 독점적으로 다루어지는 분야에서 자율적인 통제에 의해 관련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는 진료권별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지역별로 환자와 관련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돌봄이나 보건 문제에 대해서도 환자를 연계하면서 여러 의료관련 사회적인 문제에도 참여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나타난 문제들이 의료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 측면이 있으나, 내부적으로 해결방법이 제시될 수 있으면 대처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런 일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대규모 정부 예산이 아니더라도 지방자치단체에도 공공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충분히 있고, 재정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참여를 통해 관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추진과정의 결과는 의료개혁의 시기를 놓치거나 늦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지, 현실과 동떨어진 의대정원을 둘러싼 정부나 의사단체의 싸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료 제도를 바꾸거나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도록 유도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데, 저 쓸데없는 일들이 끝나야 시작될 수 있을 듯 하다.